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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생 1호’ 창신동엔 벗겨진 벽화만 가득… ‘신통기획’으로 재개발 속도 붙을까[메트로 돋보기]

입력 | 2023-03-15 17:41:00



서울은 한국의 수도이자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입니다. 서울시청은 그래서 ‘작은 정부’라 불리는데요, 올해 예산만 47조2052억 원을 쓰고 있답니다. 25개 구청도 시민 피부와 맞닿는 정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또는 서울을 여행하면서 ‘이런 건 왜 있어야 할까’ ‘시청, 구청이 좀 더 잘할 수 없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본 적이 있을까요? 동아일보가 그런 의문을 풀어드리는 ‘메트로 돋보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매주 한 번씩 사회부 서울시청팀 기자들이 서울에 관한 모든 물음표를 돋보기로 확대해보겠습니다.

“부우우웅~”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골목길. 각종 옷감을 실은 오토바이들이 좁은 골목길을 줄지어 달렸습니다. 오토바이를 아슬아슬 피해 언덕길을 올라가자 국내 최대 봉제 공장 밀집 지역인 ‘창신동 봉제거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옷감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 여러 대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골목을 지나가고 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소형 봉제 공장이 골목마다 들어서 있는 이곳은 서울의 대표적인 낙후 지역으로 꼽힙니다. 1970년대 평화시장 일대에서 넘어와 자리를 잡은 공장들과 오래된 주택이 밀집해 있는 창신동 봉제거리는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 당시 ‘도시 재생 1호’ 사업지로 지정됐습니다.

철거 대신 보존을 택했던 도시재생. 그동안 투입한 예산만 1000억 원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이날 방문한 창신동은 시곗바늘이 50년 전에서 멈춘 듯 ‘도시 재생’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습니다.


● 문 닫은 역사관과 벗겨진 벽화
창신동 647-50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봉제 거리 골목 언덕에 있는 역사관 입구는 이날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건물 가까이 다가가니 ‘역사관 운영 종료 안내’라는 문구가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습니다. 지난달 28일 문을 닫은 이 역사관은 2018년 개관 당시 ‘서울 도시재생사업 1호’로 불리며 많은 기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찾는 사람은 개관 초기를 제외하고는 기대만큼 늘지 않았고, 5년도 채 안 돼 문을 닫는 운명에 처한 겁니다.

13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앞에 붙은 운영 종료 안내문.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서울시 관계자는 “개관 당시 연 10만 명을 목표로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방문객이 줄어들었다. 방문객이 연간 1만 명도 되지 않았다”며 “위치상으로도 접근이 어려워 민간 위탁 종합평가에서도 2년 연속 ‘미흡’ 평가를 받았고, 결국 폐관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역사관 건립을 포함해 창신동 도시 재생 사업에는 지금까지 수백 억원의 예산이 투입됐습니다. 시에 따르면 역사관을 건립하면서 32억6000만 원이 들었고, 주민 공동 이용시설 및 안전안심 골목길 조성 등 도시 재생을 위한 ‘마중물 사업’에만 총 200억 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날 봉제거리 골목길 중간중간에는 얼룩지고 벗겨진 벽화만 남아 있었습니다. 계단에 그려진 꽃 그림은 색이 바랜 지 한참 돼 보였고, 벽화 안에 담긴 시(詩)는 칠이 벗겨져 제대로 읽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창신동에서 40년간 살았다는 주민 김모 씨(64)는 “40년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며 “종로구는 서울의 중심인데 이곳은 너무 낙후됐다. 전부 철거하고 새로 도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골목길 모습. 계단에 칠한 그림과 글씨가 벗겨져 잘 보이지 않는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 주민들이 가장 원하는 건 ‘주거 환경 개선’
원래 창신동 일대는 뉴타운지구로 지정돼 아파트 단지 등으로 재개발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원순 전 시장은 2013년 뉴타운 지정을 해제하고 이듬해 서울의 1호 도시 재생 선도 구역으로 선포하면서 개발 방식을 전면 수정했습니다. 그런데도 현재 창신동의 모습은 10년 전과 별반 차이가 없는 상황입니다. 주민들이 가장 원하던 주거 환경 개선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도시 재생’이 아닌 ‘도시 정체’가 돼버린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창신동 봉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홍모 씨(59)는 “도로가 너무 좁고 가게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불이라도 날까 봐 무섭다”며 “미관상으로도, 안전상으로도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한때 벽화마을로 입소문을 타며 젊은층의 인기를 끌었던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도 창신동 봉제거리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이제 창신동은 다시 원점에서 재개발을 추진합니다.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서울시가 민간 재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며 발표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후보지로 창신동 일부 지역이 선정된 것입니다. 재개발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창신동은 아파트 5000여 세대가 들어서는 강북의 랜드마크로 탈바꿈할 전망입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재개발이 잘 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공은 다시 서울시가 쥐게 됐습니다. 창신동 주민들의 오랜 꿈, ‘주거 환경 개선’이 꼭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전혜진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