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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만 있었어도… 산림청 “산불진화 위해 임도 설치해야”

입력 | 2023-03-16 03:00:00

해마다 대형 산불 겪으며 절감
임도 있으면 신속한 초기 진화 가능
국내 임도, 선진국의 14분의 1 수준
산림청 “2027년까지 3207km 확충”



소방차량들이 임도를 이용해 산불 현장 가까이에 접근해 진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11일 오후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쪽 지리산 국립공원 자락. 이날 낮에 발생한 산불은 오후로 접어들면서 더욱 기세를 올렸다. 소방청의 산불 대응 단계가 2단계로 상향되고 헬기 59대와 소방, 군, 경찰 등 2000여 명이 나섰으나 좀처럼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남성현 산림청장을 비롯해 현장에 있던 진화인력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야간에는 헬기가 철수해야 한다. 화재 현장은 급경사의 산이라 진화 차량도, 진화대원도 접근이 어렵다. 애써 가꾼 산이 밤새 타들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특수진화대원 등이 화선(火線) 가까이까지 접근했으나 진화차량 등이 접근하지 못해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날 비가 오면서 오전 하동 산불은 91ha(잠정)의 피해를 낸 뒤 꺼졌다.

하지만 진화에 나섰던 경남 진주시청 소속 A 씨(64)가 숨졌다. A 씨는 전날 밤 현장에서 심정지 상태로 쓰러졌다. 그가 쓰러진 곳은 가파른 산 중턱 부근. 차량 접근이 어려워 구급대원이 A 씨를 업고 차량까지 달려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끝내 숨졌다. 산림청 관계자는 “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임도(林道)만 있었더라면…”이라며 안타까워했다.


● 산림청 “산불 진화 임도 반드시 확충돼야”
산림청이 15일 ‘대형산불 방지를 위한 임도 확충 전략’을 발표했다.

지난해와 올해 대형 산불을 겪으면서 인력과 장비가 발화 지점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임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 산림청 관계자는 불이 났을 때 임도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천당과 지옥 차이’라고 했다.

8일 경남 합천에서 발생한 산불의 경우 초기 강한 바람이 불어 급속히 확산됐으나 야간에 임도를 통해 장비와 인력이 투입돼 밤샘 진화작업을 벌일 수 있었다. 덕분에 일몰 시 10%에 불과했던 진화율이 다음 날 오전 5시경 92%까지 올라갔다.

반면 11일 지리산 국립공원 자락 산불은 임도가 없어 오후 10시 반 진화인력이 대부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특수진화대원의 사투 끝에 밤샘 진화율은 다소 올렸지만 임도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상황이었다.

전문가들도 산불 발생 때 임도의 역할은 진화 및 확산 방지에 결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과 5월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확산을 막는 데에도 임도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산불 예방 임도가 조성된 울진군 소광리 지역의 경우 임도가 거의 없었던 강원 삼척시 응봉산 지역에 비해 산불 피해가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지난해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에 산불이 났을 때 2020년에 설치된 산불 진화 임도 덕분에 200 500년 된 금강소나무 8만5000그루를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 산림청 “매년 임도 500km씩 늘릴 것”
산림청은 현재 332km에 불과한 산불 진화 임도를 매년 500km씩 늘려 2027년까지 3207km까지 확충할 계획이다.

산불 진화를 목적으로 설치되는 산불 진화 임도는 그동안 국유림에만 332km가 설치됐고 공유림과 사유림에는 올해 처음 일부 지역에만 설치된다. 산불 진화 임도는 일반 임도(도로 폭 3m)보다 도로 폭(3.5m 이상)이 넓게 설치된다. 굳이 산불 진화 임도가 아닌 일반 임도라도 산불 진화에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임도는 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산림(총 629만 ha)에 설치된 임도는 총연장 2만4929km. ha당 3.97m에 불과하다. 반면 산림 선진국인 독일은 ha당 54m, 일본은 ha당 23.5m로 우리나라보다 각각 13.6배, 5.9배나 높다. 더욱이 국유림의 임도 밀도는 ha당 4.98m인 데 반해 국내 산림 중 74%를 차지하는 공·사유림 임도 밀도는 ha당 3.6m에 불과하다.

특히 임도 설치에 여러 제약이 따르는 국립공원 지역은 ha당 0.16m에 불과해 산불 발생 시 진화 어려움에 따른 대형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임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산림 소유주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나 부재산주(不在山主)가 많은 데다 임도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동의를 받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꼭 개설해야 할 임도 노선을 불가피하게 바꾸는 경우도 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산불을 공중과 지상에서 입체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산불 진화 임도 확충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임도 예산을 대폭 확충하고 임도 시설이 취약한 국립공원 등에도 적극적으로 임도를 개설하겠다”고 말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