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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생태계 뭉쳐야 경쟁력” 韓-美-日-대만 전쟁

입력 | 2023-03-16 03:00:00

글로벌 반도체 클러스터 大戰 〈上〉 삼성, 세계최대 용인 산단 추진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추진하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이 완성되면 단일 ‘첨단 시스템 반도체 단지’ 기준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각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내에 확보하려고 나선 가운데 대형 클러스터 구축 경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

1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 일본, 대만 등 주요 반도체 경쟁국은 정부, 지자체, 민간이 한 팀이 돼서 클러스터를 강화하기 위한 전력 질주를 하고 있다.




● 미국, 일본, 대만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질주’

미국은 지난해 8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527억 달러(약 68조 원) 규모 ‘반도체과학법’을 서명하며 자국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향한 신호탄을 쐈다. 이후 보조금, 세제 혜택을 노린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대만 TSMC와 미국 인텔은 애리조나주에 각각 435억 달러, 300억 달러 규모의 공장 설립에 나섰다. 삼성전자도 텍사스주에 170억 달러 규모의 공장 신설에 들어갔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주요 기업들을 끌어들여 최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드는 게 목표다. 2030년까지 자국 내 최소 2개 이상의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방침이다.

과거 반도체 강국이었던 일본도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공급망 재편을 절호의 기회로 삼고 기업들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대표 클러스터는 ‘실리콘 아일랜드’로 불리는 규슈 섬의 구마모토현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추경 예산으로 7740억 엔(약 7조5000억 원)을 편성하고 대만 TSMC가 일본 내 처음으로 짓는 구마모토 생산시설에 공장 건설 비용의 약 40%인 4760억 엔을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공격적으로 육성하며 이에 맞춰 소부장 기업들도 구마모토현에 새로 거점을 신설하거나 이전·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대만은 북부부터 서부, 남부에 이르는 첨단과학단지 13곳을 ‘반도체 벨트’로 키우고 있다. 대표 격인 신주과학단지는 1980년 설립돼 첨단기술 분야 기업 600여 곳이 입주해 있다. 초기 설립 시 필요자금의 49%를 지원하고, 투자 초기 5년간 면세 혜택을 주는 등 단지 내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다. 대만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160조 원을 투입해 북부 신베이부터 남부 가오슝까지 반도체 공장 20곳을 추가 건설하고 있다. 총면적은 약 200만 ㎡로, 야구장 40개 규모다.




● “클러스터의 경쟁력이 반도체 운명 갈라“
이처럼 클러스터에 투자가 집중되는 것은 단순히 기업 한두 곳의 경쟁력이 아닌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대결에서 승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소재·부품부터 장비, 설계, 제조, 후공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완성되는 것이다. 나아가 반도체 소재, 디자인, 기계, 환경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연구하는 대학 및 연구기관 등의 협업이 필수적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만 봐도 애리조나는 컴퓨터, 전자제품의 메카인 데다 여러 대학이 고도로 숙련된 인력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실리콘밸리와도 인접해 칩 제조에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텍사스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NXP, 인피니언 등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은 종합반도체(IDM) 업체들의 생산기지가 집결돼 있다.

이번에 용인에 구축할 ‘코리아 실리콘 힐즈’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 운명을 결정할 투자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수도권 단지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평가다. 클러스터의 성패를 결정하는 협력회사의 집적과 국내외 인재 유치에 절대적 장점을 봤을 때 수도권이 유일한 선택지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회원사 244개사 중 약 85%가 서울, 경기권에 자리잡고 있다.

새롭게 단지를 조성하는 용인은 기존 생산단지인 기흥, 화성, 평택 등과도 접해 있고, ‘팹리스 밸리’인 판교와도 가까워 시너지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타이밍 싸움이고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기존의 클러스터를 최대한 이용하고 확장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라며 “이런 점을 고려해 수도권 집중에 대한 여러 여론이 있음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파운드리 생산 설비 증대는 국내 팹리스 업체들의 시제품 연구개발(R&D) 기회의 확대로 이어져 반도체 전반의 생태계가 상생하는 선순환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엔비디아에 도전장을 내민 국내 퓨리오사AI나 리벨리온 등과 같은 AI반도체 팹리스들이 성장하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