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천안사업장 둘러보는 이재용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17일 충남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20년간 300조 원을 투입해 경기 용인시에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반도체 공장 5개와 설계업체, 소재·부품·장비 기업 150곳이 들어설 이 클러스터는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 반도체 단지다. 세계 반도체 기업들을 자국으로 끌어들여 첨단 산업의 주도권을 쥐려는 미국, 반도체 산업 고도화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는 중국에 맞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총본산이자 보루 역할을 맡게 된다.
삼성전자의 이번 투자 결정은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비전 제시다. 특히 30년째 선두를 지키고 있는 메모리반도체가 아닌 시스템반도체 생산라인 5개를 집중 건설하기로 한 데 주목해야 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비(非)메모리 분야 1위인 대만 TSMC에 2위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새 반도체 공장들은 정부가 조성하기로 한 15개 국가첨단산업단지 가운데 용인시 처인구의 새 산단에 들어선다. 용인 기흥구, 화성, 평택의 기존 시설과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고, 핵심 인재 확보에도 유리한 지역이다. 삼성전자와 계열사들은 충청권 반도체 패키지 특화단지, 영남권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생산거점, 호남권 스마트가전 생산거점 등 비(非)수도권에서도 10년간 60조1000억 원의 투자를 동시에 진행한다.
삼성이 물꼬를 튼 투자 대열에 다른 대기업까지 합류한다면 생산거점 해외 이전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문제도 완화될 것이다. 올해 2월 한국의 취업자 증가 폭은 31만2000명으로 2년 만에 가장 적었고, 청년층만 보면 1년 전보다 12만5000명이나 줄었다. 이번 투자로 중장기적으로 160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예상된다니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이 호응할 차례다. 정부는 반도체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제때 공급할 수 있도록 수도권 대학 정원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최근 야당이 전향적 자세로 돌아선 반도체특별법도 미국 대만 일본 등과 벌이는 국가 대항전에서 최소한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세제 혜택 등을 담아 여야 합의로 신속히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
삼성의 투자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조업의 명맥을 20년, 30년 뒤까지 유지하기 위한 생존 프로젝트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초격차 경쟁력은 거센 신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경제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핵심 자산이다. 한국 대표 기업이 사활을 걸고 내놓은 승부수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민관정이 힘을 합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