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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같던 총련계 대학 담장 너머 주인공처럼 자유 꿈꿨던 내 얘기죠”

입력 | 2023-03-16 03:00:00

재일 조선인 2세 양영희 감독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 번역 출간
“청바지-주말외출 금지 당했지만
다른 세상 향해 나아가는 꿈 담아”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의 저자인 재일 조선인 2세 양영희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위대한 수령님’ ‘영광스러운 조국’ 같은 말을 들으며 자랐지만 나는 그들의 언어에 익숙해지지 않고 늘 의문을 가지며 저항했다”고 말했다. 양영희 감독 제공


“수용소 같은 곳에서 얇은 벽 너머의 자유를 꿈꿨습니다. 이 소설은 제가 그토록 만나길 꿈꿨던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저의 이야기입니다.”

재일 조선인 2세 양영희 감독(59)의 첫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마음산책·사진)가 최근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양 감독은 북한 체제에 갇힌 재일 조선인 가족사를 풀어낸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2006년)과 ‘굿바이 평양’(2011년),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년)를 만든 이로, 소설은 친(親)북한계 단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운영하는 일본 도쿄 조선대 학생 박미영의 이야기를 그렸다. 도쿄에 있는 양 감독을 13일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소설의 주인공 미영은 대학 담장 너머 다른 세상을 꿈꿨던 어린 시절의 나”라고 말했다.

양 감독은 1983년 도쿄 고다이라(小平)시에 있는 조선대 문학부 신입생으로 입학하던 때가 생생하다고 했다. 학교는 입학 첫날부터 그에게 “다른 꿈은 허락되지 않는다. 조직에 네 모든 것을 위탁할 것을 맹세하라”고 강요했다. 학생들은 4년 내내 기숙사에서 지내야 했다. 청바지 금지, 오후 6시 이후 통행금지, 주말 외출 금지…. ‘금지의 세계’를 살았던 그는 학교와 벽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무사시노미술대 학생들의 자유로운 삶을 동경했다.

소설 속 미영처럼 양 감독이 조선대 진학을 택했던 건 도쿄에서 마음껏 연극을 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양 감독의 고향은 총련 소속 재일 조선인이 많았던 오사카다. 양 감독은 “남편에게 종속된 채 평생을 살아온 한 여자가 이혼을 요구하며 자기 삶을 찾으러 집을 떠나는 연극을 14세 때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그때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인형의 집’과 비슷한 내용의 당시 연극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소설 속 미영이 학교를 나와 도쿄 중심가에 연극을 보러 다니다가 교사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는 장면은 실제 경험에서 나왔다. “대학의 외출 금지 조치에 ‘아르바이트를 못 하면 학교에 다닐 돈이 없다’며 맞섰고, 결국 내가 이겼다”고 했다. 양 감독은 미영과 마찬가지로 ‘조직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맹세를 끝내 거부한 채 극단에 들어갔다.

미영이 무사시노미술대에 다니는 일본인 남학생과 사랑에 빠지는 대목은 창작했다. 양 감독은 “그 시절에는 국적과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일본인 남학생과는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며 “자유롭고 싶고,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꿈을 꾼다는 점에서 그들과 나는 서로 닮았다”고 했다.

“1980년대 도쿄 조선대 같은 곳은 지금도 어디에나 있어요. 어딘가 혹은 무언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끝내 자기 목소리를 지키는 이야기로 읽히길 바랍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