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네’ 아바타 서비스 협업을 통한 마리킴의 예술세계 확장
아티스트 마리킴은 게임 속에서 튀어나온 여자 캐릭터 같았다. “안녕하세요.” 긴 생머리와 개미허리, 유리구슬 같은 큰 눈을 가진 소녀들을 그린 자신의 작품을 닮은 눈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그의 그림들처럼 그의 나이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가 타고 온 하늘색 포르셰 전기차는 혹시 은하철도 999가 아니었을까.
15일 서울 종로구 코코네 사무실에서 만난 아티스트 마리킴이 메타버스 전문기업 코코네와 손잡고 만든 아바타를 선보이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021년 국내 화가 중 최초로 NFT(대체불가토큰)를 발매해 6억 원에 낙찰시켰던 그가 최근 메타버스 전문기업 ‘코코네’와 손잡고 아바타를 활용한 메타버스 서비스 ‘센테니얼(Centennial)’의 프로듀서로 변신했다. 코코네는 아바타와 패션을 결합한 CCP(Character Coordinating Play·캐릭터 꾸미기) 사업을 펼치는 회사다. ‘디지털 세상에서 아바타 옷 갈아입히기 놀이’라고나 할까. 과거 싸이월드 미니미와 아이템을 떠올리면 된다. 마리킴은 “이번에는 메타버스의 세계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스테파니가 들어봤다.
―메타버스의 세계관은 무슨 뜻인가.
“‘세계관’은 게임의 시나리오를 이루는 시간적, 공간적, 사상적 배경을 말한다. 캐릭터부터 전체적 스토리까지 아우른다.”
―어떤 세계관을 만들었다는 얘긴가.
“이용자들이 메타버스에 꾸며진 근미래 도시 ‘센테니얼’에서 아바타를 통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을 즐기도록 했다. 애완동물이나 로봇과 같은 ‘알터이고(alter-ego)’와 정서적 교감을 쌓고, 멋진 집도 구입할 수 있다. 평소 제 작품 스타일대로 아바타 캐릭터와 패션 아이템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는 걸그룹 뉴진스의 ‘민지’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도 있다.”
아티스트 마리킴이 걸그룹 뉴진스의 ‘민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코코네 아바타 캐릭터. 코코네 제공
“센테니얼은 ‘100년마다’란 뜻이다. 아바타가 100년을 살면 인간 생애 주기와 얼추 비슷하다. 디지털 분신과 인간의 소통을 추구한다.”
―메타버스 스토리를 만드는 건 영화 작업과 비슷한 것 같다.
“그렇다. 직접 연출하고 연기한 영화를 찍어 본 적이 있다. 센테니얼의 뼈대는 ‘마리와 100년의 눈’이라는 제목의 그래픽 노블을 써보다가 떠올린 것이다. 캐릭터들이 눈을 떠보니 낯선 판타지 세상인데 이들이 100년 앞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이다.”
―메타버스 세상을 기획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나.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공부와 담쌓고 지내다 고교 졸업 후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고 했다. 멜버른 RMIT대에서 멀티미디어를 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크리에이티브 미디어’ 전공(애니메이션과 인터랙티브 미디어)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2007년 서울로 돌아왔다.
호주에 살 때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와 블로그에 2년 동안 매일 하나씩 그림을 그려 올린 게 그의 삶을 바꿨다. 파워블로거로 대중에게 알려지더니 세계적 거장의 작품만 다루던 서울 강남구 오페라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수십 점 사들여 전시했다. 이후 가나아트의 전속 작가가 됐고 학고재 갤러리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국내 미술계 학맥과 인맥이 없던 그는 디지털 세상이 키운 스타 아티스트다.
―그림은 어떻게 그리나.
“200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로 그렸다. 처음 10년 동안은 컴퓨터 펜 마우스로만 그렸다. 요즘에는 특수 출력해 그 위에 물감을 덧입혀 유화 느낌을 내기도 한다.”
―왜 왕눈이 소녀를 그리나.
“미술을 정식으로 안 배우고 만화책에서 그림을 배워서인지 캐릭터의 눈을 예쁘게 강조하는 만화가 제 작품 스타일에 영향을 줬다. 눈은 내부와 외부를 잇는 어떤 통로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자신의 왕눈이 소녀 캐릭터를 ‘아이돌’(Eyedoll)로 명명했다). 제 그림은 사실 ‘디지털 버전의 옷 갈아입히기’인데 이것이 과연 미술로서 유니크한 가치가 있는지 고민했다.”
―고민의 답을 찾았나.
“유니크한 가치가 있다는 답을 내렸다. 100명의 메타버스 아바타가 100명의 상의와 100명의 하의를 골라 입으면 100 곱하기 100 곱하기 100 즉, 100만 개의 유니크한 ‘작품’이 생성된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의 벽이 허물어진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첫 NFT 작품을 낸 작가다.
“안 해 본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2021년 당시 경매 낙찰가가 6억 원까지 치솟아 놀랐다. 해외에서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그 해에 ‘클론X’라는 NFT를 발행해 큰 돈을 벌었다. 최신 일본 유행과 패션으로 꾸며진 3D(차원) 아바타 캐릭터였다. NFT도, 메타버스도 새로운 영역이라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설립된 코코네는 2011년 ‘포켓코로’를 선보이면서 일본 아바타 서비스 시장을 석권했다. ‘주머니 속 놀라운 세계에 아바타들이 살고 있다’는 신개념으로 2014년 구글플레이 재팬의 ‘2014년 베스트 앱’으로 선정됐고, 2015~2017년 구글플레이 재팬의 앱 수익 순위에서 연속으로 비게임 부문 ‘톱 3’에 올랐다. 매월 6400개의 새로운 디지털 패션 아이템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이용자들이 구매한 모든 디지털 아이템은 총 160억 개에 달한다. 코코네 서비스를 경험한 전체 글로벌 이용자 수는 현재까지 1억 3000만명을 넘어섰다.
코코네는 21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블록체인위크에 참여하면서 회사 대표상품으로 마리킴이 작업한 ‘센테니얼’을 내세우기로 했다. 마리킴은 “미국에도 메타버스 서비스 회사들이 있지만 한국의 캐릭터는 미학적으로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했다.
코코네 의 ‘센테니얼’ 메타버스 서비스. 코코네 제공
―왜 메타버스에 뛰어들었나.
“코코네는 ‘디지털 옷 갈아입히기’로 일본에서 크게 성공한 회사다. 그 사업을 잘하는 회사와 예술계에서 디지털에 밝은 제가 만나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겠다 싶었다.”
―메타버스는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해방 아닐까.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영화를 보면 실상과는 전혀 다른 내가 있으면 좋겠다 싶지 않나. 누구나 현실의 자신에게 불만족스러운 면이 있게 마련이니까.”
―미래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전통적 관념의) 공부를 안 해도 된다. 저는 게임을 많이 해서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리킴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와 가까운 Z세대를 우리 관점으로 알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며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정의하게 놔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는 “흔히들 제 작품을 ‘팝아트’라고 하지만 스스로는 ‘개념미술’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실과 가상이 혼재하는 세상에서 무엇이 진짜냐 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