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공정선거 지킴이’ 尹대통령의 아이러니한 전당대회 개입 논란[황형준의 법정모독]

입력 | 2023-03-16 14:00:00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 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 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 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

2013년 10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참석했다. 동아일보DB



‘검사 윤석열’을 키운 것은 팔할이 선거 개입 의혹 수사였다. 2013년 10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으로 있으면서 상부 보고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고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가 직무 배제됐다. 며칠 뒤 국정감사장에서 상부의 외압을 폭로했고 그는 좌천의 길을 걸었지만 ‘국민 검사’가 됐다. 결국 2012년 총선과 대선에 개입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을 위반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이 사건으로 징역 4년에 처해졌다.

 ● 공무원의 선거 관여 10년으로 공소시효 늘어나
당초 선거법 위반 사건은 공소시효가 6개월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2014년 2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됐거나 지위를 이용해 범행을 저지른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10년이 되도록 선거법이 개정됐다. 가히 ‘윤석열법’이라 부를 만했다.


§공직선거법
제85조(공무원 등의 선거 관여 등 금지) ① 공무원 등 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신설 2014. 2. 13.>

제268조(공소시효) ③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범한 이 법에 규정된 죄의 공소시효는 해당 선거일 후 10년(선거일 후에 행하여진 범죄는 그 행위가 있는 날부터 10년)을 경과함으로써 완성된다. <신설 2014. 2. 13.>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인 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총선 개입 의혹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 수사를 벌이던 특별수사3부가 특활비 일부가 총선 여론조사에 쓰인 정황을 발견하면서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당시 수사를 책임진 3차장검사였고 특수3부장은 현 양석조 서울남부지검장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현기환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과 공모해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친박계 인사들을 대거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선거 및 경선 전략을 수립해 이를 당 공천관리위원회에 반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직 대통령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것도 사상 처음이었다.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임하며 공천권을 쥐던 시절에는 청와대가 여론조사를 돌리고 선거 기획, 판세 분석 등을 하더라도 죄가 안 됐다. 노무현 정부 이후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고 권력 분산 등을 위해 당정분리가 이뤄진 뒤에 바뀌었을 뿐이다.(노 전 대통령도 나중에 당정분리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2018년 7월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며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함부로 남용한 것으로서 헌법의 근본 가치인 대의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정당의 자율성을 무력화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 그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라며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20대 총선에서 유권자의 의사가 왜곡되고 선거의 자유와 공정이 심각하게 훼손될 위험이 초래되었다”고 질타했다. 2심 재판부도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는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및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지위’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정당과 후보자들에 대한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 과정에 개입하여 이를 왜곡시켰다”고 지적했다.

● 중앙지검장 시절 경찰 정보관의 총선 개입 의혹도 수사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16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국하며 손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와 함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경찰 정보관의 선거 정보 수집 의혹도 수사해 현 전 수석과 그의 지시를 받아 이행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 이철성 전 경찰청장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당시에도 윤 대통령이 지검장이었고 2차장검사는 박찬호 전 광주지검장, 공안2부장은 김성훈 안양지청장이었다)

현 전 수석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 강조 사항 등을 확인한 뒤 치안비서관실을 통해 경찰에 ‘친박’ 후보를 위한 정보 활동을 지시한 혐의였다. 이에 당시 경찰청 정보국은 정당, 검찰, 법원, 각 정부 부처와 주요 기관에 파견된 정보경찰에 전국 판세 분석 및 선거 대책, 지역별 선거 동향 등을 작성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국가기관이 공적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는 등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로서 결코 허용될 수 없다”며 강신명 전 청장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현 전 정무수석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이미 징역형이 확정됐다는 이유로 면소(기소 면제) 판결했다.

● 공정선거, 공작정치 척결에 앞장섰던 尹
이처럼 윤 대통령은 공정선거에 대한 강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관련 수사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같은 해 5월 기자와 독대한 티타임에서 경찰 정보관의 선거정보 수집 의혹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거 기획, 판세 분석 등 이런 거 해주면 선거 영향 미치는 행위로 하면 공무원은 시효가 다 10년이야. 원래 6개월이잖아. 그런데 공무원의 선거 기획,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등은 다 10년이다. 우리가 국정원 수사하면서 법이 개정됐다. 그 수사 때문에 법이 생겨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게 된 것이다.”

“정보기관이나 공무원이 선거 영향 미치는 행위는 못 하게 못을 박아야지. 이 정부도 다음 정부도. 이거 한 놈들은 어느 직급 이상은 다 책임지게 만들고, 특히 고위직은 출세하려고만 하면 안 되고 조심해야지…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인이나 저명인사 사찰, 찌라시 마타도어 돌리고, 이야기 지어내고, 그런 짓거리 하지 말라는 거지.”
                                                                                                                       - 취재 메모 중 -
그런 소신에서인지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당선인 신분으로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에서 사정, 정보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현 정부에서 아직까지 국가기관이 동향 정보 등을 파악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국가기관의 공작정치를 척결하려는 의지에 박수 쳐 줄 일이다.

● 국민의힘 전당대회 논란

한일 정상회담 참석차 일본 방문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6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환송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성남=뉴스1



4년 가까이 지난 뒤, 윤 대통령은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노골적으로 ‘친윤(친윤석열)’ 후보를 지원 사격했다. 나경원 전 의원의 당 대표 출마를 주저앉힌 것이나 안철수 의원이 사용한 ‘윤-안 연대’에 대해 “실체 없는 표현으로 이득 보려는 사람은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현 대통령실이 전당대회에, 박근혜 청와대가 공천에 개입한 동기는 둘 다 국회에 자기 사람을 입성시켜 국정을 원만히 이끌기 위한 ‘당정 일체’가 목표였다. 다만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 공천에 대놓고 개입하지 않기 위해 이심전심이 되는 당 대표 후보를 만들려 했던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이른바 ‘비박’계인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이 박 전 대통령의 뜻을 반영해주지 않을 것을 우려해 공천에 개입하려 했기 때문이다.


전대 개입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지난달 “선거 개입이라면 공직선거법에 따른 것이어야 하는데, 지금 전대는 당 행사이지 선관위가 주관하는 선거가 아니다”고 “선거 개입이 명백히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원이 당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 않으냐”며 “윤 대통령은 한 달에 300만 원, 1년에 3600만 원을 당비로 내고 있다. 당원으로서 대통령은 할 말이 없을까”라고도 했다.

실제 선거법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에서 경선과 본선거에만 적용된다. 전당대회와 관련해선 정당법에 제49~52조에 ‘당 대표경선 등의 자유방해죄’ ‘당 대표경선 등의 허위사실공표죄’ 등이 규정돼 있지만 공무원의 선거관여 금지 조항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실 해명대로라면 선관위가 주관하지 않는 학교 행사인 초등학교 반장, 회장 선거 등 다른 선거는 교원 등 공무원이 개입해도 된다는 것인가.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민주주의 선거에선 공정이 생명이고, 공무원은 선거에 중립적이어야 한다.

1년에 3600만 원 당비를 내는 엄연한 당원이라는 대목에선 ‘차라리 대통령 급여를 반납하고 공무원 신분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통령 말 한마디의 무게를 모르는 듯한 대통령실의 해명이었다.


특히 ‘공정선거 지킴이’이자 ‘공정선거의 상징’이었던 윤 대통령이 법망을 피해 당내 선거에 개입한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참 이율배반적(아이러니)이다.

결국 대통령실의 바람대로 이른바 ‘윤심’을 아는 김기현 대표가 선출됐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박 전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의 1·2심 판사의 지적처럼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및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지위’에 부합했는지, 당의 자율성을 존중했는지, 후보자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했는지 국민들은 이미 판단했을 것이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