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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잔치’ 아카데미를 매혹시킨 ‘색깔 있는 사람들’[이승미의 연예위키]

입력 | 2023-03-17 17:00:00

95년 동안 亞주연상·흑인 감독 수상 전무
아카데미와 ‘유색인종’의 역사




아카데미 공식 트위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비영어권 영화로 작품상을 받는 역사적 기록을 세운 2019년 이후 3년 후. 말레시아 출신 홍콩 배우 양쯔충(양자경)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에올)로 아시아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들어 올렸다. 아시아 감독과 아시아 배우가 배우가 중심이 돼 제작된 ‘에에올’는 이날 11개 부문에 최다 노미네이트 돼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7개 부문에서 최다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일본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2020년에는 중국계 감독 클로이 자오(노매드랜드)와 윤여정(미나리)이 각각 감독상과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수상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색인종’이라 불리는 백인 외 인종에게 늘 냉담했던 아카데미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에 유색인종의 아카데미 수상 역사를 되돌아 봤다.


양자경, 키 호이 콴, 봉준호 감독, 우메키 미요시(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제공|아카데미 공식 트위터


○95년만에 순수 아시아계 배우 주연상
아시아계 배우 중 가장 처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배우는 1956년 ‘왕과 나’에서 영국 출신의 젊은 미망인과 사랑에 빠진 태국 왕을 연기하고 남우주연상을 받은 몽골계 혼혈 미국인인 율 브리너다. 순수 아시아계 배우 중에서는 1957년 ‘사요나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일본 우메키 미요시가 최초이며 64년 만에 윤여정이 ‘미나리’로 같은 상을 받았다. 스티븐 연도 같은 해 ‘미나리’로 순수 아시아계 배우로는 최초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올해 ‘에에올’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베트남계 키 호이 콴은 1984년 ‘킬링필드’로 같은 상을 받은 캄보디아 출신 행 S. 응고르 이후 39년 만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순수 아시아계 남자 배우가 됐다. 아역 배우 출신으로 ‘구니스’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나 성인 이후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맡을 배역이 점차 없어진 그는 결국 배우를 떠나 무술 스태프로 활동했다. 그러다 아시아 배우이 총출동한 2018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보고 시대가 달라졌다고 생각해 다시 배우로 복귀, 올해 마침내 상까지 거머쥐게 됐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난민 출신인 그는 무대에 올라 “난민 수용소에서 1년을 보낸 내가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무대에 서게 됐다. 이게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소감으로 관객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또한 ‘에에올’의 작품상 수상으로 다시 한 번 무대에 오르게 된 그는 시상자이자 아역 시절 자신의 대표작인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의 주연 해리슨 포드와 40년 만에 뜨거운 포옹을 나눠 화제를 모았다.


연출자 중에는 1966년 ‘모래의 여자’로 일본 데시가하라 히로시가 아시아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6년 대만 출신인 리안(이안)이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최초로 감독상을 받았다. 리안 감독은 2013년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 번째 감독상을 품에 안았고 중국계인 클로이 자오(노매드랜드)와 다니엘 콴(에에올)도 상을 받았으나 비영어 영화로 감독상을 받은 아시아 연출자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유일하다.


영화 ‘몬스터 볼’ 할리 베리, ‘흑과 백’ 시드니 포이티어 스틸


○흑인 감독에게 박한 아카데미?
양자경에게는 ‘아시아 배우 최초 여우주연상’ 뿐만 아니라 ‘역사상 두 번째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유색인종 배우’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앞서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유색인종 여배우는 2011년 ‘몬스터 볼’에서 사형수였던 남편의 사형을 집행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 여자 역으로 상을 받은 흑인 배우 할리 베리다. 유색인종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기까지 74년이 걸린 셈이다.


수상 당시 할리 베리는 제이다 핀켓, 안젤라 바셋, 비비카 폭스 등 흑인 여배우들을 언급하며 “이 순간은 이름과 얼굴이 없는 모든 유색인종 여성들을 위한 것이다. 오늘 밤 드디어 기회의 문이 열렸다”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 수상소감을 아직까지도 역대 최고의 오스카 수상소감 중 하나로 꼽힌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최초의 흑인 배우는 지난해 1월 9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드니 포이티어다. 손목에 수갑을 나눠 찬 채 도주한 흑인과 백인 범죄자를 통해 인종차별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 1958년작 ‘흑과 백’을 통해서다. 지난해 ‘킹 리차드’로 상을 받은 윌 스미스까지 총 5명의 흑인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에 앞서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해 여우조연상을 받은 해티 맥대니얼은 오스카 최초 연기상을 받은 흑은 배우로 기록돼 있다. 아니러니하게도 노예제도에 대한 비판 없는 시각을 보여주며 아직까지도 인종차별적 작품이라는 일부 평가를 피하지 못하고 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흑인에게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안긴 셈이다.

놀랍게도 아직까지 단 한 명의 흑인 연출자도 감독상을 받지 못했다. 1992년 ‘보이즈 앤 후브’의 존 싱글턴이 흑인 최초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후 리 다니엘스(프레셔스), 스티브 맥퀸(노예 12년), 배리 젠킨스(문라이트), 조던 필(겟 아웃), 스파이크 리(블랙클랜스맨) 등이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했다.

이승미 스포츠동아 기자 s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