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똘똘한 팹리스 10개, 반도체단지 성공 열쇠

입력 | 2023-03-17 03:00:00

글로벌 반도체 클러스터 大戰 〈下〉 성공 위한 조건
팹리스 점유율 美 68%, 한국 1%… 소부장 함께 키워야 클러스터 성공
투자 결정해도 민원 등에 착공 지연 “기업-정부-지자체 한팀 이뤄야”




글로벌 1위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기업인 미국 퀄컴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48조 원이다. 글로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 점유율이 60%가 넘는 미국 엔비디아도 지난해 28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반면 한국 1위 팹리스 업체인 LX세미콘의 지난해 매출액은 2조1000억 원대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조 단위 매출을 올린 곳이다. 어보브반도체와 제주반도체의 매출액은 각각 2429억 원, 1750억 원으로 글로벌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16일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한국의 세계 팹리스 시장 점유율은 1% 수준이다. 미국(68%)은 물론이고 대만(21%)과 중국(9%)에도 한참 뒤처져 있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예정지의 조감도. SK하이닉스 제공 

삼성전자가 전날 20년간 300조 원을 투입해 경기 용인에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겠다고 발표한 것도 생태계 전체가 성장해야 반도체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가 용인 클러스터에서 매출 1조 원대 팹리스 기업 10곳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배경이다. 팹리스는 그 자체로도 성장성이 큰 산업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세계 팹리스 시장 규모는 2019년 600억 달러(약 78조7000억 원)에서 2020년 680억 달러, 2021년 738억 달러로 매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클러스터 성공을 위해서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성장도 뒷받침돼야 한다. 연구·생산 시설이 모두 필요한 소부장 기업들이 클러스터의 집적 효과를 누리기도 좋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은 반도체 업계에서 슈퍼을(乙)로 불린다. 웨이퍼에 감광액을 바르는 코터, 현상하는 디벨로퍼 장비 시장의 90%가량을 차지하는 도쿄일렉트론 등 일본 소부장 기업도 반도체 클러스터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국내 소부장 기업은 외국의 경쟁 기업보다 영세하지만, 국내 기준으론 중견기업이거나 대기업인 탓에 각종 지원을 받지 못했다”며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한국형 아이멕(IMEC·벨기에의 반도체 연구·인력양성센터)을 중심으로 소부장 기업 대상의 지원이 보다 공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민간기업의 투자 결정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정책 및 행정적 지원이 뒷받침됐을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속도’가 가장 큰 경쟁력이 될 수도 있어서다.

실제 SK하이닉스도 2019년 2월 용인에 12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4개를 짓는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계획대로라면 2021년 토지 수용을 마치고 2022년 반도체 공장 착공에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발생한 민원, 토지 보상 장기화, 용수 공급 인프라 구축 장기화 등으로 현재까지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클러스터는 올해 상반기(1∼6월) 중에야 착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경기 평택에서 송전선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4년, SK하이닉스가 여주시와 용수 공급 해결 방안을 찾는 데 1년 반이 걸렸다”며 “정부, 지자체가 한 팀을 이뤄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