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도 ‘HMD’ 머리에 쓰면 가보기 힘든 지역 실감나게 경험 언어 몰라도 현지인과 소통 가능… 지구촌 단절성 극복에도 기여
메타(페이스북)가 서비스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의 모습. 가상공간에 모인 캐릭터들이 화상으로 접속한 화면 속 사람들과 회의를 할 수 있다. 메타 제공
HMD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Head Mounted Display’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머리에 쓰는 화면’ 정도가 되겠군요. 이 HMD는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을 즐기기 위한 도구로 개발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초기의 용도는 게임이었습니다. 게임을 더 입체적이고 실감 나게 즐기기 위해 개발됐죠.
이후 HMD는 가상현실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 발전해 갑니다. 이 HMD를 개발하는 업체 중 뛰어난 기술을 가진 오큘러스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9년 전인 2014년 3월 세계적인 소셜미디어(SNS) 기업인 페이스북(현 메타)이 무려 2조5000억 원을 들여 이 오큘러스를 인수합니다. 페이스북은 오큘러스를 통해 미래 세계의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전망한 것 같습니다.
오늘의 세계 지리는 다국적 기업인 메타도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는 HMD를 이용해서 세계 어디든 실감 나게 가상현실을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지리 세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함께 떠나보시죠.
● 메타버스란 무엇인가
페이스북은 2021년 기업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시가총액이 388조 원으로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약 400조 원)에 맞먹는 거대기업이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이례적이었습니다. 새로 선택한 이름은 바로 ‘메타’였습니다. ‘메타버스’의 메타입니다. 메타버스는 무엇일까요? 그리스어로 ‘초월한, 너머의’라는 의미의 ‘메타(meta)’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단어로 ‘초월한 세계’라는 의미입니다. 1992년 출간된 ‘스노 크래시’라는 SF 소설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입니다. 쉽게 보자면 ‘현실을 초월한 가상세계’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가상세계라는 것은 기존에도 이미 존재했습니다. 수많은 이용자가 대규모로 접속해 즐기는 온라인 게임 역시 일종의 메타버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메타버스에 HMD가 접목되면 우리는 훨씬 실감 나는 세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가상의 공간이 현실 어딘가에 존재하는 지역이나 장소 또는 공간이라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한국의 교실이나 집 거실에 앉아 HMD를 착용하고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에 갈 수 있고, 야생동물의 지상낙원 케냐의 세렝게티 초원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극지방이라 감히 접근도 어려운 남극에 갈 수도 있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를 등정할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계 어디든 메타버스에서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겁니다.
더욱 중요한 건 메타버스는 그저 그래픽적으로만 구현된 가상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사용자들도 함께 접속해서 실제 세계처럼 서로 소통하고 활동하는 공간이라는 겁니다. 즉, 메타버스를 통해 몽골에 가면 실제 몽골 주민을 만날 수 있는 겁니다. 메타버스를 통해 구현되는 세계에는 실존하는 사용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가상현실과 가장 큰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정보기술(IT) 업체가 앞다투어 메타버스 플랫폼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 지식의 본질에 접근할 기회, 메타버스
‘지식의 해상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책, 강의나 영상 등 간접 체험과 학습으로는 지식의 본질을 정확히 전달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개념이 있기도 하고 때로는 배우는 학생의 수준이 아직 덜 성장했기 때문에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각 지식을 학생의 수준에 맞게끔 적절하게 보정하는 수준을 ‘지식의 해상도’라고 합니다. 가령 남극의 빙하를 초등학생에게 가르친다면 땅을 덮고 있는 큰 얼음덩어리라고 얘기합니다. 중학생이나 고교생이라면 빙하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천천히 움직이는 유동체라고 좀 더 본질에 가까운 지식을 전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지식의 해상도에 맞춰서 지식을 전달하더라도 직접 남극의 빙하를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명확하진 않을 것입니다. 이때 메타버스를 통해 남극의 빙하를 본다면 학생들은 빙하라는 개념과 지식의 본질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메타버스를 통해 세계를 경험한다면 또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우리가 사는 지구촌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 듯하지만 의외로 서로 무심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저는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선 우리가 다들 아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보다 훨씬 오랫동안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지구촌인 것 같지만 의외로 실제 세계는 단절된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면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도 우리가 듣게 되는 지구촌의 각 소식은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매우 중대한 사건이거나 뉴스 등의 매체에서 선별한 사실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메타버스 세상에서 아프리카를 방문하고 그곳 주민들과 직접 소통한다면 지구촌의 단절성은 크게 극복될 것입니다.
● “가상세계 중독될 것” 암울한 전망도
아직은 더욱 개선되어야 하지만 다가올 미래에서 메타버스와 함께 인류의 지리 경험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서로의 기쁨과 아픔에 더욱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서로 간의 이해도가 높아지며 갈등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반면 메타버스와 그 기반이 되는 인공지능(AI) 등에 대한 디스토피아(암울한 미래)적 예측도 있습니다. 미래의 인류는 지식노동은 AI에 빼앗기고, 육체노동은 로봇에 빼앗긴 가난한 상태로 메타버스의 가상세계에 중독된 채 살아가며, 지구촌은 메타버스를 운영하는 거대기업에 의해 지배될지도 모른다는 어두운 전망이 그것입니다. 다가오는 지리 세상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단지 새로운 기술과 세계를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우리에게 그 미래의 방향이 달린 것만은 확실합니다.
안민호 마포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