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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한일 정상회담을 위한 우리 대통령의 방일은 12년 만이다. 두 정상은 양국 간 전략대화 등 각종 협의체를 복원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경제안보대화를 신설하는 등 전방위 협력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정상 간 셔틀외교도 복원하기로 했다. 두 정상은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 “관계 정상화로의 커다란 한 걸음”이라고 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한일 관계는 짧게는 4년, 길게는 12년 이어진 갈등을 일단 봉합하고 정상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 시작부터 매끄럽지 못한 게 사실이다. 관계 복원의 돌파구는 최대 현안인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에 우리 정부가 ‘배상판결금 대위변제’라는 해법을 제시하면서 마련됐다. 당장 피해 당사자의 거센 반발과 야당의 ‘저자세·굴욕외교’ 비난이 거셌지만 정부로선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후속 조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일본은 화답하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없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간접 표현으로 대신했고, 일본 측 피고 기업의 배상도 ‘한일 미래기금 참여’라는 우회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일본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일본은 용서받을 기회를 또다시 놓쳤다. 과거사 갈등은 일단 접어뒀다지만 해결된 것이 아니다. 봉합한 상처는 큰 응어리로 남을 것이고, 역사는 언제고 일본의 부끄러움을 추궁할 것이다.
앞으로 한일이 가야 할 길은 멀다. 그간의 관계가 그랬듯 앞길이 순탄치도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은 쫓기는 듯 서둘렀고 일본은 마지못한 듯 굼떴다. 그 속도가 다르니 마찰음이 요란하다. 더욱이 긴 여정을 위한 연료통은 절반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다. 미래를 향한 동행이 아슬아슬한 4년에 그치지 않으려면,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치유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쏟아야 한다. 다시 출발선에 선 양국 공동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