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기자
전기차 설계의 기본 뼈대가 되는 전용 플랫폼은 흔히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이라 불린다.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와 구동 모터 등이 차량 하부에서 스케이트보드처럼 납작하게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플랫폼은 그 위에 무엇이든 자유롭게 얹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자동차가 가져야 할 구동과 관련한 능력은 바닥에 깔아 놓고 상부에는 원하는 형태의 실내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결국 자동차의 상체와 하체를 분리하겠다는 이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서 주목받는 주요 기술이 ‘바이 와이어(By-Wire)’다. ‘스티어 바이 와이어(SbW)’와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BbW)’. 이런 단어에서 와이어는 전선을 뜻한다. SbW는 조향(스티어링)에서, BbW는 제동(브레이킹)에서 기계적인 연결 대신 전기적인 구성 요소를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기술은 차량의 상하체를 분리하고 싶지만 운전자가 수행하는 중요한 차량 조작은 하체로 꼭 전달해야 한다는 문제의 대안이다.
전기차 시대 이전에도 차에서는 전자 장치의 활용이 늘고 있었다. 자동변속기 조작에는 기어봉 대신 버튼이나 다이얼을 활용하는 ‘시프트 바이 와이어’가 이미 일반화됐다. 그럼에도 조향과 제동처럼 안전과 직결되는 영역은 여전히 기계적인 연결 체계가 유지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차량은 운전대를 돌리거나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전기 모터나 유압으로 그 힘을 증폭시켜 조향과 제동에 나서면서 물리적으로 연결된 구조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
반면 SbW와 BbW가 현실화된 자동차에서는 상하체 사이에 가느다란 전선 몇 개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래서 바이 와이어의 완성은 자동차에서 운전석이 어떤 위치에 놓여도 되는 자유를 줄 수 있다. 정해진 위치에 둥글게 만들어 놓은 운전대를 돌리는 대신 차량 안 어느 자리에서건 게임처럼 조작해 차의 진행 방향을 바꾸고 버튼을 눌러 차를 세우는 일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HL만도가 SbW 기술을 선보인 가운데 자율주행의 발전도 바이 와이어를 뒤에서 강하게 밀고 있다. 기계적인 조향, 제동 체계에서도 자율주행은 구현될 수 있지만 바이 와이어 구조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이 가능하다. 두 기술이 함께 구현되면 운전대를 놓고 자율주행으로 전환하는 순간, 차량 내부로 운전대가 숨어들어가게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자율주행이 그러한 것처럼 바이 와이어 역시 안전 확보라는 중요한 과제를 남겨 놓고 있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전기 장치의 오류 상황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문제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