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헉헉∼” 짧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것은 초보자이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것은 베테랑이다. 그들의 심장은 천천히, 생각에 잠기면서 시간을 새겨나간다. 우리는 거리에서 서로 스치면서 서로의 호흡 리듬을 들으며 서로의 시간 흐름을 느끼게 된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2019년 3월 열린 2019서울국제마라톤 겸 제90회 동아마라톤에서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이 질주하는 모습. 동아일보 DB.
#2.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m와 1만 m, 마라톤까지 제패한 ‘체코의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페크는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고 했다. 미국 AP통신 종군기자 출신 크리스토퍼 맥두걸은 2010년 ‘본 투 런(Born to Run)’이란 책에서 달리기는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본능이라는 것을 멕시코의 한 원시 부족을 통해서 보여줬다.
이윤희 대표. 이윤희 대표 제공.
19일 열리는 ‘동마(동아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 250회 완주에 도전하는 이윤희 파워스포츠과학연구소 대표(65)는 “달리면 즐겁다”고 했다. 4시간 넘게 달리는 데 정말 즐거울까? 그는 “4시간 이상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기쁨이 날 사로잡는다. 몸도 느끼고 마음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운동생리학 박사로 마라톤과 신체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했다.
“솔직히 건강을 챙기는 측면도 있죠. 나이 먹으면서 시간 대비 효과가 가장 좋은 게 마라톤입니다. 가성비가 최고인 운동이죠. 심혈관계는 물론 골격근의 노화 속도를 줄일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 달리기, 마라톤입니다.”
이동윤 위원장.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우리 몸 자체가 안 쓰면 퇴화합니다. 도태되는 것이죠. 근육도 안 쓰면 몸 자체적으로 없애버립니다. 그게 우리 몸의 생존 본능입니다. 열심히 움직여야 합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마음도 살아 있지 않죠.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짜증을 내는데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몸에서 받아줄 자신이 없으니 짜증으로 회피하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면 어떤 스트레스도 받아 줄 수 있는 몸이 됩니다.”
“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막연하게 건강해야지라는 생각은 안 됩니다. 그럼 운동을 하지 않아요. 목표를 세우고 달려야 합니다. 호주 원주민들을 하루 20km를 걷고 달렸어요. 인간은 매일 아침저녁 합쳐서 20km는 달려야 한다고 봅니다. 주말엔 토요일 일요일 70km를 달려야 진정한 마라토너 아닐까요? 전 그 목표로 달리고 있습니다.”
조웅래 회장. 조웅래 회장 제공.
‘디바 비키’이 김가영 씨. 신원건 기자=laputa@donga.com
3인조 걸그룹 가수 디바의 비키로 활동했던 김가영 씨(45)는 “스트레스 탈출의 돌파구”였다고 했다. 디바 해체의 충격과 둘째를 낳은 뒤 찾아온 산후 우울증을 달리기로 극복한 뒤 운동마니아가 된 그는 “사람들을 피해 살고 있었고 가족 모두 미국에 있어 외로웠다. 내 생활은 겉은 화려한데 속은 그렇지 않은 측면이 많았다. 스트레스가 많았다. 달리니 해소가 됐다”고 했다.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43)은 심리적 안정을 꼽았다. 그는 “살다 보면 우리가 예측 가능한 것도 있지만 예측하지 못하는 게 더 많다. 그런 예측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할 때 마라톤 같은 힘든 운동에 익숙해지면 마음이 더 안정되는 것 같다. 몸을 위해서 달리지만 결국 마음도 튼튼해지게 하는 게 마라톤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예지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 김예지 의원 제공.
김병준 인하대 교수. 동아일보 DB.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땐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가 있다. 시작은 외적 동기, 예를 들면 다이어트, 건강, 기록, 메달 획득 등이지만 나중엔 자기만족, 성취감 등 내적 동기로 바뀐다. 무엇보다 마라톤을 하면서 삶에서 스트레스 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회사 일이나 사업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결국 다시 마라톤에 더 매진하게 한다. 마라톤 같은 운동은 심리학적으로 단일 요법으로 멀티플 효과를 준다. 정말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황익주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마라톤 붐이 일 때인 2000년도 중반 한 언론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필자가 주목하는 대목은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구성이다. 마니아의 수준에서 마라톤을 계속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화이트칼라 직업에 종사하는 지식 중산층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직업 활동은 항시적으로 남아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발생시킨다. 한편 마라톤은 훈련일지의 작성 관행에서 보듯이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적이고 분석적인 생활 태도를 요하는 스포츠인데, 이는 바로 지식 중산층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생활 태도이다. 그런 점에서 마라톤은 지식 중산층의 구성원들에게 매우 ‘선택적 친화성’이 높은 스포츠라고 하겠다.’
이와 관련 김병준 교수는 “다양한 연구 결과 고소득자와 고학력자들이 운동에 빠진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개인적인 운동이지만 건강을 넘어 대인관계, 사업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