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이숙경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 인터뷰
제14회 광주비엔날레를 위해 각지에서 운송된 작품을 여는 ‘해포식’이 열린 13일 관계자들이 호주 작가 베티 머플러의 작품 ‘나라를 치유하다’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여러분 안녕하세요,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 열리지 못했던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한 달 뒤인 4월 7일 드디어 개막합니다.
이숙경 감독은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광주비엔날레를 맡은 한국인 감독으로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전시를 위해 3월 6일 입국한 이숙경 감독을 10일 만났습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어떻게 펼쳐질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부드럽게 스며드는 예술의 힘
이숙경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광주비엔날레 제공
이숙경 감독에게 이에 대해 자세하게 물었습니다.
김민(김): 전시의 구성이 총 4가지 주제, ‘은은한 광륜’, ‘조상의 목소리’, ‘일시적 주권’, ‘행성의 시간들’로 되어 있어요. ‘은은한 광륜’에서 광주의 저항과 연대의식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으로 시작해 점점 그것을 근대주의, 탈식민주의, 생태와 환경 등 더 큰 주제로 확장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숙경(이): 정확해요. 구체적인 소재에서 시작해 보편적으로 나아가는 구성이죠. 전시에 참여하는 모든 작가들은 자신의 특수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개인적 경험이거나, 자신의 커뮤니티에 관한 것이거나, 젠더에 관한 이야기도 되죠.
자신에게 중요한 부분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풀어낸다면 그것이 전 지구적 시선(planetary vision)으로도 맞닿을 수 있다고 봤어요.
이: 작가뿐 아니라 큐레이터인 저도 뒤에 숨지 말고 내 경험을 더 적극적으로 끌어오자고 생각했어요. 이번 코로나19로 영국 전역이 록다운(이동 제한) 되었을 때 동양 고전을 읽었거든요. 제가 유교적인 집안에서 자랐는데 어릴 적 할아버지가 해주셨던 ‘너무 꼿꼿하게만 해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말들이 동양의 오랜 지적 전통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았고, 결국 이번 전시의 주제로 그것이 이어졌어요.
타이키 삭피싯, <스피릿 레벨>, 2023 (영상 스틸). 영상 및 사운드 설치.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양현재단 및 SAC갤러리 후원. 영상 스틸. 작가 제공.
이: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추고 전부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예술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람이 죽는데 이게 다 무슨 의미냐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러나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린 것이 바위를 뚫듯이 예술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유약어수’는 결국 권력에 관한 이야기예요. 물은 비유일 뿐, 부드럽고 여린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다른 곳에 스며들잖아요. 예술도 그렇게 (가랑비에 옷이 젖듯)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바꿔 놓거나, 감동을 주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게 한다는 거죠.
김: 너무 좋은데요. 저도 사실은 예술이 뭔가 예쁘고 반짝이고 사치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흔한 것 같아 가끔 답답할 때가 있었거든요.
이: 그래서 그 작품 얼마야? 몇억이라고? 이런 이야기들이 흔하죠(웃음). 그러나 예술은 삶에 대한 이야기고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소통의 욕구도 있구요. 예술의 본질인 내적 성찰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죠.
김: 그런 접근이 오히려 폼 잡지 말고, 어깨에 힘주지 말고 예술을 바라보자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세상을 떠나려고 미술을 하지 말자. 미술이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인 것처럼 대하지 말자는 거죠. 예술이 돈 있는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한국 미술의 가능성
김: 참여 작가 명단에 한국 작가도 여럿 보이는데, 전체의 17% 정도로 구성되었다구요.이: 네. 꾸준히 자기 작업을 해 온 분들이고, 아주 젊은 작가가 아니에요. 그 이유는 젊은 작가는 아직 기회가 많다고 봤고, 국제전에서 많이 보여주지 못한 작가는 누구일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런 분들을 찾다 보니 홍이현숙, 장지아, 엄정순, 김기라, 오석근 같은 작가가 나온 거죠.
한국 미술의 결이 이렇게 넓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한국의 비엔날레를 왔는데 맨날 밖에서 보던 작가가 있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외국 감독이 오면 언어 장벽 때문에 소개되기 어려웠던 국내 작가도 있고, 제가 이번에 처음 만난 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작가분들이 “왜 저에게 오셨냐”고 깜짝 놀라곤 하셨어요.
김: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계시니, ‘한국 미술의 매력’이 뭐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굉장히 가능성이 많죠. 우선 미술 인구가 많아 작가층이 두텁고 좋은 시스템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어요. 다만 아트마켓인 아트페어나 비엔날레의 차이를 아직 모르는 분이 많은 것처럼 예술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요. 공공 영역과 시장 영역의 구분이 잘 정리가 되면 좋겠어요. 인프라는 잘 되어 있거든요.
김: 미술관이 많다는 말씀이죠?
이: 네 충분한 예산과 인력이 뒷받침이 된다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잘 될 가능성이 많을 것 같습니다. 광주비엔날레도 해외에선 유명하거든요. 제가 감독이 되고 정말 많은 축하를 받았어요. 이렇게 있는 것을 잘 지키고 더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지아, <아름다운 도구들 3 – 12개의 콜라주(Convict)>, 2023. 시아노타입 콜라주. 9점, 각 193 x 120 cm.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작가 제공.
현대미술의 종합선물세트
이: 저도 세계의 많은 비엔날레를 보러 다니는 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작가 연구를 하기 위해서예요. 비엔날레는 짧은 시간에 작은 공간에서 무지하게 많은 작가를 볼 수 있는 기회예요.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죠.김: 다만 일반적으로는 비엔날레가 어렵다거나 난해하다고 느끼는 인식도 있죠.
이: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냥 척 봐서 좋은 게 현대미술은 아니에요. 맥락을 봐야 할 때가 많고, 그것을 위해 캡션은 물론 영상부터 도록까지 많은 보조 자료를 준비해두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대중주의적인 작품만 전시할 수는 없죠. 중요한 것은 작품들이 담고 있는 심오하고 깊은 문제를 희석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에드가 칼렐, <여기 당신이 우리 마음에 심어 놓은 요정들이 있어요>, 2023. 수채화 종이에 수채 및 먹지. 339 x 600 cm.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작가 및 과테말라 프로엑토 울트라비올레타 제공. 사진: 조 클라크.
김: 그럼에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전시를 만들려고 고민도 하셨다고요.
이: 의자도 많이 놓았고, 작품 해설도 가능한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작가에겐 사람들이 자기 작업을 이해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작가가 쉽게 말하진 못하더라도 큐레이터는 쉽게 얘기를 해줘야죠. 균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요.
김: 이번에 한국에 꽤 오래 머물게 되시겠어요.
이: 6주간 머물게 되는데 25년 만에 가장 길게 머무는 거예요. 비엔날레 전시관이 큰 5개의 공간으로 이뤄졌는데, 테이트모던의 보일러하우스와 비슷한 크기로 매우 큰 규모예요. 또 전시가 개막하고 난 다음에는 7, 8일 테이트 리서치센터와 공동 주관으로 심포지움을 엽니다.
물론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휴식을 취하듯 좋은 그림을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한 작품도 많아요. 베티 머플러라는 작가의 작품도 아주 멋진 추상화예요. 또 기존 전시 동선을 바꿔서 광장에서 바로 올 수 있도록 웰컴 센터를 만들었거든요. ‘그냥 부담 없이 들어와서 아무거나 보고 가세요’라는 느낌을 주려고 했습니다.
1996년 첫 광주비엔날레가 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관객까지 전시를 보러 오신 걸 보고 감동한 기억이 아직 남아 있어요. 그런 열린 마음을 가진 관객분들에게 잘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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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경 감독은 이날 서울에서 만났는데요. 전시 준비 기간에 해야 할 작업이 많아 ‘서울로 오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며 떠났습니다. 비엔날레가 개막하면 또 전시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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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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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데이비드 치퍼필드’에 관해 다룬 뉴스레터를 보고 보내주신 구독자 의견을 소개합니다.
■ 제 개인적 느낌은 치퍼필드가 겸손한 디자인에 능한 건축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 아모레퍼시픽 건물은 (…) 자세히 뜯어보면 거대한 매스가 수직 루버로 분절된 듯 개방감 있게 표현한 시각적 즐거움은 색다른 묘미로 다가오면서 ‘볼수록, 자세히 보아야 예쁜’ 건물이라는 걸 수 년이 지나면서 느끼고 있네요.
이에 반해 여의도 파크1 건물은 재미있게도 누가 짓는지 별 관심도 없었는데 생기고 난 후, 보면서 ‘특이하네!’ 하면서 누가 지었지, 궁금해하던 중, 80을 바라보는 엄마가 ‘어머 이거 파리에서 본 퐁피두 건물 같아, 그 건축가가 지은 거 아니니’ 하셨을 때야 찾아보니 정말 그 건축가가 맞는 걸 보고 저 자신도 깜짝 놀랐답니다.
(…)치퍼필드의 수상은 묵묵히 성실히 건축이라는 본분을 다하는 건축가의 길에 프리츠커 상이라는 끝이 있다는 걸 알려준 거 같아 괜히 뿌듯하네요. 그리고 이분의 건축은 뭔가 사러 깊다는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랬을 때의 포근함 따스함보다는 시크한, 세련된 미니멀 스타일을 구사하지만 사려 깊은 츤데레 같은 묘한 느낌이 있어 지속적으로 이분이 건축가로서 러브콜을 받는 게 아닐까 싶어요.
☞ 치퍼필드의 건축에 대한 자세하고 깊은 감상을 보내주셨어요. 저보다 더 애정을 담고 봐주신 것 같아 독자 의견으로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사려 깊은 츤데레 같은 묘한 느낌’, 정말 공감되네요! 흥미로운 의견 감사합니다.
■ 사진으로 본 그의 건축물들이 과거와 현재의 조우, 주변 환경과 건축의 조화 등을 보여주는 것 같고,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존재감 있는 모습입니다. 단절이 아닌 이어짐, 연결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감동적이고요. “수백만 번의 기술적, 미학적, 정치적 선택이 이어졌다” 는 말이 그의 사려 깊음을 드러냅니다. 공간에서 무엇을 살려야 할지, 없애야 할지 고민했다는 게, 과연 건축가답습니다.
■ 남아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따듯한 마음이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 발자국 물러서면 보이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가까이에선 화려한 건축물에 비해 눈에 덜 띄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풍경과 자연스레 섞이는 그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