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에 속는 마음의 작동 원리(2)
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이나 댓글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남이 보면 사실( fact)을 교묘하게 바꾼 거짓(fake)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전혀 알지 못하고 하염없이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진실의 눈을 가리게 되는 마음의 작동 원리에 대해 살펴보자.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절대 속지 않았다” 강해지는 믿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사이비 종교집단을 연구해 1957년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을 세상에 내놨다. 자기 생각이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 ‘부조화’ 상태가 되면 재빨리 생각을 바꿔서 ‘조화’ 상태로 만들려는 마음의 원리다. 현실은 변화시키기 어렵지만 생각은 마음대로 바꾸기 쉽기 때문이다. 현실을 부정하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정신 승리의 일환이다.페스팅거 연구팀은 이를 연구하기 위해 사이비 종교 신도 집단에 직접 들어가 관찰했다. 종말론을 믿는 신도들은 1954년 12월 21일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 저택에서 자신들을 구원해줄 UFO(미확인비행체)를 기다렸다. 이들은 인류 종말의 날 대홍수가 일어날 때 외계인이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이라 믿었다.
레온 페스팅거 연구팀이 1957년 인지부조화 이론을 정리하며 쓴 저서 ‘예언이 끝났을 때’의 초판 표지 사진. 종말론에 따라 외계인이 UFO를 타고 지구에 착륙한 모습을 담았다. 아마존닷컴
얼마나 ‘투자’했는지에 비례하는 정신 승리
페스팅거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 행동’을 했는지에 따라 자기 합리화가 증가한다고 봤다. 신도들은 직장에서 종말론을 전파하다 해고됐고, UFO를 타려고 집을 팔았으며, 가족과 싸우고 가출했다. 투자 행동이 커졌으니 쉽게 돌이킬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 오거나 누가 집에 찾아오면 사실은 외계인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라고 믿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돈, 시간 등 많은 ‘투자 행동’을 했을수록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사이비 종교에서 빠져나오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공식 홍보영상 캡처
강력한 인지부조화 사고를 일으키는 5가지 조건△확신과 믿음이 특정 행동을 유발한다.
△그 믿음을 위해 중대한 ‘투자 행동’을 한다.
△믿음은 구체적이고 현실 세계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확실하게 반박할 수 있는 반대 증거가 나타난다. (이때 합리화가 일어난다)
△믿음을 함께하는 공동체가 있다.
-레온 페스팅거 외 2명의 저서 ‘예언이 끝났을 때’-
모두가 ‘예스’ 할 때 ‘노’ 할 수 없는 동조 심리
모두가 ‘예스(Yes)’ 할 때 ‘노(No)’ 하는 것이 소신 있는 태도라고 하지만 사실 이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성을 상당히 거스르는 일이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는 때로는 거짓말도 진실로 믿게 만드는 강한 동력이 된다. 다른 이들의 생각에 동조하면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있다’는 마음의 안정을 주기 때문이다. 앞서 종말론을 믿는 신자들도 함께 모여 기도하고 정보를 나누는 돈독한 공동체가 있어 믿음이 더욱 강화될 수 있었다.1951년 미국의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동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그는 실험 참가자에게 직선을 하나 보여주고, 3개의 보기 중 어느 것과 가장 유사한지 고르게 했다. 실제 실험 참가자는 1명뿐이었고, 나머지 6명은 참가자로 가장한 실험 도우미였다. 도우미들은 실험 참가자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일부러 틀린 답을 크게 말하도록 했다. 아래 그림처럼 검은색 바탕에 그려진 선 4개 가운데 문제(I)는 실제로 보기의 (B)와 가장 길이가 유사했지만, 일부러 (A)나 (C)를 큰 소리로 답하게 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틀린 답을 말하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대세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틀린 답에 동조하는 경우도 있다. Simply Psychology
영화 ‘마스터’에서 불법 다단계 사기 회사의 수장인 진현필 회장(배우 이병헌)이 추종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있을 때 더욱 거짓에 현혹되기 쉽다. ‘마스터’ 공식 홍보영상 캡처
자꾸 보면 정이 쌓이듯 신뢰도 쌓인다
처음에는 믿지 않더라도 가짜뉴스도 자꾸 보면 신뢰나 호감이 쌓이게 된다. 2018년 미국 심리학회지에 실린 ‘사전 노출은 가짜 뉴스의 인지된 정확성을 높인다’는 연구에 따르면 가짜 뉴스에 한 번이라도 노출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를 처음 접한 사람보다 정확한 뉴스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자신의 견해와 다른 뉴스라 하더라도 이 같은 효과가 동일하게 일어났다. 노출이 반복적으로 일어날수록 신뢰도가 올라갔다. 거짓에 말려들지 않는 아주 기본적인 방법
‘헛소리연구소(Bullshit studies lab)’ 운영자이자 미국 웨이크 포레스트대 심리학과 교수인 존 페트로첼리는 거짓을 구별해 내기 위해 비판적 사고는 필수라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 그는 저서 ‘우리가 혹하는 이유’에서 5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것을 제안한다. △충분한 근거 자료가 있는가 △편견이나 감정이 판단에 영향을 미쳤는가 △주장을 거스르는 증거를 검토했는가 △다양한 출처를 토대로 결론 내렸는가 △다른 사람을 설득할 만한 충분한 논거가 있는가 등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헛소리하는 대상에게 ‘왜’ 대신 ‘어떻게’라고 묻는 것이다. ‘왜’라고 물으면 이론적이거나 철학적 논거를 대면서 구체적 증거는 슬쩍 빼버리고 얼버무리기 쉽기 때문이다. 대신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는지를 물으면 ‘왜’라고 물었을 때보다 증거를 얼버무리며 말하기 어렵게 된다. 다만 페트로첼리 교수는 “근거를 명확히 밝혀달라고 요청했을 때 대답으로 훨씬 심한 헛소리를 듣더라도 놀라지 말라”며 “비판적 사고를 하려면 회의적인 태도와 질문하는 습관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야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