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농구의 치밀한 경기력 향상 연구
한국 야구만큼이나 농구도 국제 경쟁력 하락에 대한 고민이 큰 상황에서 2030년까지 세계 수준으로 올라서겠다는 일본 남자 농구가 유망주들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대표팀 수준의 훈련 연계 체계를 치밀하게 가동시키고 있다. 지난달 일본농구협회(JBA)는 ‘대표팀 육성 캠프’라는 이름으로 17~22세 사이 선수들을 모아 성인 대표팀이 추구하는 농구 스타일의 핵심을 전수하는 강화 훈련을 개최했다. 사실상의 대표팀 ‘쇼케이스’였다.
이번 훈련의 헤드 코치는 남자 대표팀 톰 호바세 감독이다. 미국 출신인 그는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 여자 대표팀을 이끌고 은메달이라는 대성과를 일궈냈다. 올림픽 이후 바로 남자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닷새간 선수들을 붙잡고 대표팀의 과제인 공수 전개 과정, 관련 전술, 움직임 등을 자세히 알려줬다. 지금까지 우리 농구계의 관행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일본 농구가 벌이고 있다.
●17~22세 유망주 불러 대표팀 농구 스타일 이식
캠프에서는 U-22, U-18 대표팀 코칭 스태프도 합류해 호바세 감독을 거들었다. 연령별 대표팀 지도자도 자연스럽게 성인 대표팀의 농구를 공유한 셈이다. 선수 19명은 모두 22세 이하였는데 18명이 대학생, 4명이 고교생이었다. 고교생은 와쿠가와 하야토(18 ּ 194cm), 가와시마 유토(17ּ 200cm ּ 이상 오호리고), 사카모토 고세이(18 ּ 194cm ּ 다이이치고), 호시카와 가이세이(18 ּ 193cm ּ 라쿠난고)다. 이들은 만화 ‘슬램덩크’에 등장할 법한, 일본 고교 농구를 대표하는 ‘F4’ 4인방이다. 지난해 8월 열린 U-18 아시아청소년농구선수권 한국과의 결승전에서 비록 팀이 지기는 했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멤버다.고교 2학년으로 대표팀 육성 캠프에 합류했다가 대표팀에 발탁된 가와시마 유토. 일본농구협회(JBA)
유망주들에게 수준 높은 대표급 농구 경험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면서 분명한 목표 의식을 갖게 한 것이다. JBA가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유망주 경기력 향상의 핵심 포인트다. 대표팀 육성 캠프 훈련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호바세 감독은 “일본 대표팀이 추구하는 농구를 유망주들에게 전하고 반응을 보는 것이 메인 테마다. 선수들이 대표팀의 스타일을 처음으로 접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며 흡족함을 나타냈다.
히가시노 토모야 JBA 기술위원장(테크니컬 디렉터) 역시 “190cm가 넘는 선수들이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하게 코트에서 움직이는 것을 일본 대표팀의 핵심 표준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번 캠프는 그 노력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세대들이 지금은 부족하더라도 계속 위로 밀고 올라와서 기존 대표 선수들과 경쟁했으면 한다”며 연령대별 선수들을 위한 대표팀 육성 캠프가 계속 추진될 것임을 시사했다.
●대표팀 기술보고서가 60장이나?… 교본으로 공유
이번 육성 캠프 훈련에서 호바세 감독이 선수들에게 강조한 부분은 JBA 기술위원회의 테크니컬 하우스 파트에서 펴낸 일본 대표팀 기술보고서 내용과 상당 부분 맥이 닿는다. JBA는 지난해 6월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예선 3경기를 치른 일본 남자 농구 대표팀의 경기를 분석해 6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냈다. 공수 세부 항목별 수치가 팀 승패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에 따른 전술 변화까지 자세하게 분석했다. 일본 남자 대표팀은 45년 만에 나간 도쿄 올림픽에서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세계 정상급 팀인 스페인(77-88패), 슬로베니아(81-116), 아르헨티나(77-97)와 경기 중반까지 접전을 펼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올림픽 직전 평가전에서는 세계 5위 프랑스를 꺾기도 했다.일본농구협회가 일본 남자 농구 대표팀의 도쿄 올림픽 3경기를 입체 분석해서 다양한 전술 응용 팁까지 엮어 펴낸 60장의 기술보고서. 일본농구협회(JBA)
도움 수비에서는 상대가 슛을 어렵게 쏘도록 순식간에 두세 명이 상대를 에워싸는 상황을 만드는 위치 선정 방법을 제시했다. 상대 속공을 막고 팀 득점 기회를 늘리기 위해서는 팀 전체 슛의 70% 이상 상황에서 포지션 관계없이 무조건 3명이 좌우 측면과 페인트 존에서 공격 리바운드에 가담하는 전술 팁도 제안했다. 속공 전개 때 빠르게 전방으로 패스를 주거나 순간 메인 볼 핸들러로 공격 조율을 하는 2m 이상 빅맨들의 경기력 향상 또한 필요하다고 봤다. 육성 캠프 훈련에서도 기술보고서에서 제안된 스타일의 집중력을 높이는 세부 훈련이 진행됐다.
일본은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함께 공동 개최하는 농구 월드컵에서 아시아 지역 1위를 노리고 있다. 아시아 1위는 2024년 파리 올림픽 본선으로 직행한다. 쉽지 않겠지만 다음 목표는 올림픽 8강이다. 이어 2030년까지 세계 10위권에 진입한다는 계획이 서 있다. 이 목표를 위한 과제 중심에는 유망주들의 반복적인 대표팀 연계 훈련과 트라이아웃(대표팀 승격을 위한 테스트)이 있다.
우리는 어떤가. 프로농구는 시즌 막판 상, 하위권 승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초반 반짝했던 인기가 사그라지고 있다. 만화 ‘슬램덩크’가 영화로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국내 농구 쪽으로 관심이 연결되지 않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 하부리그인 G리그 소속 이현중과 NCAA(전미대학체육협회) 1부 곤자가대에 진학한 여준석은 아직 NBA로 가기에는 경기력과 현지 적응 면에서 넘어야 산이 많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했던 U-18 대표팀의 주력 선수들도 국내 각 대학으로 진학해 동계 훈련을 소화했지만 아직은 모자라다. 성인 농구와의 실력 격차를 줄여갈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비시즌 프로팀과 연습 경기하는 정도가 전부다. 계속적으로 고교-대학 유망주들이 프로에 진출할 때까지 3~4년 가까이 기량 정체를 겪고 있다는 건 뼈아프다. 농구 현장에서 20대 초반 연령대 대표팀 신설과 정기 소집 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외침뿐이다. 조상현 LG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 시절 U-23 대표팀 활성화 그림을 꽤 구체적으로 그렸으나 여러 벽에 부딪혔다. 대한농구협회는 대표팀 경쟁력 향상에 관해서는 개점 휴업이나 다름없다. 협회 홈페이지에서 간혹 업그레이드되는 건 농구인들의 경조사를 알리는 소식밖에 없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