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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돌아갈 곳이 없어요”… 연어들이 사라지고 있다

입력 | 2023-03-18 03:00:00

댐이 회유 막고 해수 염분 낮아져 강-바다 사이서 갈 곳 잃은 연어들
강인한 생존력도 소용없어졌다면, 지구 생태계 적신호 켜진 것 아닐까
◇연어의 시간/마크 쿨란스키 지음·안기순 옮김/468쪽·2만2000원·디플롯



연어잡이 문화권에서는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시기에 첫 연어를 잡으면 특별한 의식을 치른다. 유픽족 여성이 미국 알래스카주 브리스틀만에서 잡은 연어과 물고기인 홍연어를 들고 감사의 표시로 입을 맞추고 있다. 디플롯 제공


포기를 모르는 어종이 있다. 드넓은 바다에 살며 몸을 살찌우다가 산란기가 되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다. 연구자들은 연어가 더 많은 먹이를 찾기 위해 서식지 이동을 택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분석한다.

연어의 회유(回游)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과정이다. 바다로 나갈 때는 포식자를 속이기 위해 피부색을 바닷물고기처럼 바꿔야 하고 강보다 짠 바닷물에 서식하려면 몸의 생화학적 구성도 조절해야 한다. 그럼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꿋꿋이 회유하는 모습은 감동을 자아낸다. 북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등 연어잡이 문화권에서는 회유하는 첫 연어를 잡으면 감사를 표하는 의식을 치렀다.

1997년 논픽션 ‘대구’를 펴내 반향을 일으킨 저자가 2020년 발간한 책이다. 연어를 중심으로 생태계 등 다양한 주제를 가독성 있게 풀어냈다.

연어는 회유 과정에서 길을 잃더라도 새로운 장소를 서식지로 삼아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연어과 어류의 다양성이 풍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만 년 전 대서양과 태평양을 헤엄치며 오가던 연어는 바다가 얼어붙자 각 바다의 특성에 맞춰 살모(Salmo) 속(대서양연어)과 옹코링쿠스(Oncorhynchus) 속(태평양연어)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오늘날 연어의 수는 형편없이 줄었다. 저자는 연어 개체 수 감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을 두루 짚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1848년 사금 발견으로 시작된 금광 개발로 강바닥에 모래진흙이 쌓였다. 연어가 산란할 때 필요한 자갈 바닥은 사라졌고, 아가미로 들어간 진흙 탓에 물고기가 질식했다. 금이 발견된 지 5년이 지나자 새크라멘토강을 찾아오던 봄 연어 떼는 자취를 감췄다.

20세기 세계 각지에 건설된 수많은 댐은 지금도 연어의 회유를 막고 있다. 급속히 진행된 지구온난화는 빙하를 녹여 바다의 염분을 낮췄고, 바다의 온도와 염분 농도를 통해 생애 주기 단계를 감지해온 연어는 혼란에 빠졌다. 대서양 연어의 개체 수는 학자들이 멸종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150만 마리 수준으로 추정된다.

19세기부터 각국이 부화시킨 연어 치어를 방류해 급감한 개체 수를 메우고자 했지만 학자들은 대체로 비판적이다. 서식지를 되살리는 근본적 대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연어 양식은 대기업이 벌이는 대규모 사업으로 발전했다. 노르웨이는 1970년대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연어 양식을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1997년 양식 연어의 생산량은 자연에 사는 연어의 어획량을 처음 넘어섰다. 오늘날 식탁에 오르는 연어 대부분은 양식 연어다.

연어 양식은 물고기의 배설물로 오염을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양식 물고기가 양어장을 탈출해 야생 물고기와 섞이는 문제도 있다. 21세기 들어 캐나다 프레이저강을 찾는 연어의 수가 급감했다. 이는 양어장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에 야생 연어들이 감염된 탓이라는 연구 결과가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되기도 했다.

저자가 극작가, 어부, 항만 노동자,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친 만큼 다루는 얘깃거리도 풍부하다. 문화·지역별 연어 요리 레시피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하지만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저자는 강과 바다를 오가며 서식하는 연어가 사라진다는 건 지구의 생존에도 적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묻는다. “물고기가 울 때 누가 그 소리를 듣는가?”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