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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과 짬뽕의 추억…잘 먹고, 바쁘게 사는 게 건강비결 [이헌재의 인생홈런]

입력 | 2023-03-19 12:57:00




김성한 전 KIA 감독이 자신이 운영하는 중국 음식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성한 전 감독 제공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투 웨이(Two way)’ 선수 오타니 쇼헤이(28·LA 에인절스)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가장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투수로는 최고 164km의 빠른 공을 던지고, 타자로는 엄청난 파워로 홈런과 장타를 때린다. 인성과 팬 서비스까지 좋아 세계적인 야구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투타겸업’을 하는 오타니가 화제가 될 때마다 소환되는 한국의 레전드 야구 스타가 있다.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 투수와 타자로 모두 활약했던 김성한 전 KIA 타이거즈 감독(65)이다. 김 전 감독은 KBO리그 최초로 투수와 타자를 겸업한 선수이자, 양 쪽 모두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선수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해태에서 데뷔한 김 전 감독은 80경기 전 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5, 13홈런, 69타점을 기록했다. 동시에 투수로는 26경기에 등판해 10승 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88을 기록했다. 3할 타율과 두 자릿수 홈런, 2점대 평균자책점 두 자릿수 승수를 모두 기록한 것.

원래부터 팔꿈치가 좋지 않았던 김 전 감독은 이듬해부터는 투구 횟수를 줄이며 타자 쪽에 집중했다. 그런데 1983년에 거둔 유일한 승리는 완봉승이었다. 1985년에도 4승을 올렸는데 그 중 한 경기에서 완봉을 했다. 그는 1986년 1경기 3이닝 투구를 끝으로 투수를 그만두고 타자 쪽에만 전념했다. 1995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거포 1루수로 활약하며 홈런왕 3회, 타점왕 2회, 골든글러브 6회, MVP 2회를 수상했다. 은퇴 후엔 지도자로 변신해 KIA 감독과 한화 수석코치, 국가대표 코치 등을 두루 거쳤다. 한국이 준우승을 했던 2009년 제2회 WBC 때도 태극마크를 달았다.

선수 시절 해태의 4번 타자였던 김성한.     동아일보 DB



KIA 사령탑 시절의 김성한(왼쪽) 감독이 김경문 전 두산 감독과 경기 전 사진을 찍었다. 동아일보 DB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열혈남아(熱血男兒)’로 불렸던 그는 60대 중반인 요즘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먼저 광주 지역 방송의 야구 해설자로 여전히 야구와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방송에서 하는 ‘먹방 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 또 다른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지역 소개 프로그램의 고정출연자 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본업은 중국음식점 운영이다. 전남 나주혁신도시에서 4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는 중국집이 그의 일터다. 김 전 감독은 “원래 광주에서 중국 음식점을 했다. 계약도 끝나고 해서 그만둘 때쯤 나주에 야구 봉사를 하러 왔다가 지인의 권유로 건물을 하나 사게 됐다. 그런데 그 건물이 세가 안 나가는 바람에 장사를 이어가게 됐다”며 껄껄 웃었다.

그는 스스로를 ‘얼굴마담’이라고 부른다.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아내가 ‘사장님’이라는 것이다. 그는 “방송 스케줄 등 개인적인 일이 없으면 항상 가게로 출근한다. 손님들도 만나고, 아는 분도 만난다. 내 얼굴 보러 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했다.


광주 지역 방송에 고정출연하는 김성한 전 KIA 감독. 선수 시절부터 좋은 입담을 과시했다.   김성한 전 감독 제공



그가 중국집을 운영하는 덴 오랜 사연이 있다. 선수 시절부터 그는 중국 음식을 좋아했다. 그 뿐 아니라 당시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은 모두 짬뽕을 유독 즐겼다. 경기 시작 전 몇몇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짬뽕 배달을 시키곤 했는데 이는 베테랑 선수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김 전 감독 역시 짬뽕을 즐겨 먹은 선수 중 하나였다.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징크스가 있다. 어떤 음식을 먹었는데 경기가 잘 풀렸다면 다음 날도 같은 음식을 먹는 식이다. 김 전 감독에게 그 음식이 바로 짬뽕이었다. 어떤 해인가는 짬뽕만 먹었다 하면 홈런을 쳤다. 짬뽕이 홈런을 부르고, 다시 홈런이 짬뽕을 부르는 식이었다.

야구가 잘 되지 않을 때도 짬뽕이 필요했다. 타격감이 좋지 않을 때면 그는 일찌감치 운동장에 나와 혼자 특별 타격 훈련을 했다. 특타를 위해서는 공을 던져주는 선수가 있어야 했는데 어린 투수들이 대개 그 역할을 맡았다. 한두 시간 공을 던지고, 공을 때리다 보면 허기가 졌다. 그 때 간단하게 시켜먹을 수 있는 게 역시 짬뽕이었다.

지도자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해태 타격코치 시절 그는 두 명의 유망주를 훌륭한 타자로 키워냈다. 그 중 한 명은 ‘스나이퍼’란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장성호 KBSN 해설위원이고, 또 한 명은 LG 타격코치로 활동 중인 이호준 코치다. 김 전 감독은 두 선수를 키우기 위해 밤늦게까지 운동장에서 타격을 지도하곤 했는데 운동이 끝나면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결론은 또 다시 짬뽕이었다.

그는 중국 음식 뿐 아니라 모든 음식을 잘 먹는다. 먹는 걸 특별히 관리하지도 않는다. 먹방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광주와 전라남도 인근의 맛집을 찾는다. 이 때로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즐겁게 먹는다. ‘소식=건강’의 척도로 여겨지는 시대에 그는 먹을 것 다 먹으면서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일까.

김 전 감독이 말하는 첫 번째 비결은 바로 사우나다. 그는 매일 아침을 집 근처 동네 공중 목욕탕의 사우나에서 시작한다. 하루를 목욕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사우나를 길게 하진 않고 30~40분 정도 한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가 차가운 물에 마사지를 한다. 사우나에서 땀을 빼기도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데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는 습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1958년생 개띠인 김성한 전 KIA 감독이 동갑인 아내 박미영 씨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김성한 전 감독 제공



또 하나는 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이다. 특히 아침은 절대 거르지 않는다. 간단히 먹기보다는 누룽지 미역북 전복죽 떡국 북어국 된장국 등 밥 위주로 그날그날 먹고 싶은 음식을 차려 든든하게 먹는 편이다.

여느 집과 다른 점은 아침 식사만은 김 전 감독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차린다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설거지는 아내가 한다. 그는 “한 10년 정도 전부터 아침을 내가 차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아내와 둘이서 정성껏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부부가 함께 식사를 하면 아침상부터 웃음꽃이 핀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평생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와 함께 즐겁게 먹는 건 무엇보다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감독을 그만두고 한 때 산에 심취한 적이 있다. 약 3~4년 간 전국의 모든 산을 돌고 또 돌았다. 근심과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였다. 당시 쌓은 체력이 현재를 지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 그는 인생 어느 때보다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먹으며 누구보다 바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운동을 하거나 운동을 시키면서 제일 만만한 게 중국 음식이었다. 짬뽕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잘 먹는다. 너무 먹어서 배가 좀 나오긴 했다. 하지만 살짝 나온 배야말로 내 자산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뜻이니까”라며 웃었다.

이헌재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