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미국이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로 부상하던 시대의 세 부자가 존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J. P. 모건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록펠러는 전 세계 정유량의 90%를 통제했고, 카네기는 영국보다 많은 철강을 생산했으며, 모건은 미국을 두 번의 파산 위기에서 구했다.”
▷록펠러와 카네기는 자수성가했지만 모건은 그렇지 않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국제금융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금융 거래를 한 사람으로 재력을 가졌다. 그 자신은 독일이 학계의 중심이던 때 괴팅겐대에서 수학을 공부할 정도로 지적이었다. 석유왕 록펠러나 철강왕 카네기가 한 분야에서 기업을 키웠다면 은행가 모건은 금융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기업을 합병하고 이사회를 통해 장악했다. 미국에 연준이 없던 1895년과 1907년에 모건이 ‘1인 연준’ 역할을 한 것은 은행의 파산과 연이은 기업의 파산을 막는 것이 누구보다 자신에게 절실했기 때문이다.
▷모건은 1912년 하원 위원회에 불려나왔다. 그와 동업자들의 금융조합이 112개 기업의 341개 이사직을 차지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그는 이듬해 사망했는데 이유가 하원 위원회에서 공개적인 비방을 당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가 사망한 해 미국에서 연준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에 따라 12개의 연준 은행이 만들어져 모건 같은 민간 은행가가 하던 역할을 맡게 됐다.
▷은행의 파산을 막는 데 세금이 쓰이는 것은 맞지 않다. 116년 전이나 지금이나 궁극적으로 은행만이 은행을 도울 수 있다. 물론 뱅크런을 막아 은행권 전체에 이익이 될 때의 얘기지만 은행의 민간 소유권이 확고하고 은행이 자율성을 갖는 나라에서는 그렇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보면 정부가 은행장들을 한데 모아놓고 몇 마디 윽박지르는 것만으로 협조 지원 정도는 간단히 될 것 같은 나라다. JP모건의 되살아난 민간 연준 역할은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없었던 은행의 한 중요한 측면을 생각해보게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