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오부치 ‘사죄’ 직접 언급 안한 日 12년 만의 셔틀외교 아쉬움 크지만 野 “굴욕적 야합” “崇日” 주장은 뻔뻔 尹도 ‘결단’ 내세우지 말고 ‘설득’ 나서야
정용관 논설실장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로 나온 조언의 핵심은 한마디로 “천천히 서둘러라”였다.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으로 잘 알려진 이 말엔 신중함, 냉철함, 치밀함 등의 의미가 깔려 있다. 정치인이 아닌 정통 외교관 출신들이 이 말을 자주 썼다. 한일 관계는 살짝 건드려도 터질 수 있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이니 섣부르게 접근하지 말라는 취지였을 것이다.
한일 관계는 늘 미묘한 정치 문제였다. 지난 10여 년, 특히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한일 관계는 블랙아웃 상태에 빠졌다. 국내 여론도 문제지만, 역사의 가해자인 일본 측 사정도 녹록지 않긴 매한가지였다.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는 문 정부 때 내팽개쳐진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외상이었다. 그로선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섣불리 발을 담갔다가 제2의 위안부 상황이 재연될 경우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민당의 ‘오너’도 아닌 그는 최대 계파인 아베파 등 강경 보수 세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도 했다. 4월엔 통일지방선거와 중의원 보궐선거도 예정돼 있다.
이번 방일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이란 정황은 이처럼 한둘이 아니었다. 4월 방미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던 이유다. 일본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듣는 귀’라는 별명을 가진 기시다는 ‘말하는 입’이 없는 듯 신중했다.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고 했을 뿐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사죄를 끝내 입에 올리진 않았다.
일본의 이런 태도는 사실 예견된 것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왜 그리 강제징용 해법과 방일을 서둘렀을까 . 대통령의 직진 스타일이나 소영웅주의를 거론하기도 하고, 외교라인의 판단 착오를 지적하기도 한다. 여권의 설명은 다르다. 현실적으로 더 이상 방치할 수도, 달리 해법도 찾을 수 없는 지경까지 온 데다 시간을 더 끈다고 해서 일본 측에 결정적 변화가 올 가능성도 거의 없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딱히 감출 패도 마땅치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변호사처럼 문구 하나하나를 따지는 일본에 전혀 다른 초식(招式)을 구사하는 전략을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이니셔티브 전략’이 먹힐지 아닐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에서 “친일 넘어 숭일(崇日)” “조공” “일본 하수인 전락” “망국적 야합” 운운하며 반일 프레임을 또 들고나온 것은 뻔뻔하다. 문 정부 때 파탄 난 한일 관계를 복원하려는 노력의 일환임을 스스로도 알면서도 이완용이니 제2의 을사늑약이니 하며 철 지난 ‘매국노’ 노래만 틀어대니 MZ세대를 비롯한 국민 반응도 시큰둥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나 여권도 ‘결단’이라는 표현은 자제하는 게 낫다. 과거 한일 관계에선 크게 두 가지 결단이 있었다. 1964년 독일에 돈을 빌리러 갔던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과 수교를 맺으라”는 에르하르트 총리의 충고를 듣고 전격적으로 한일 수교에 나선 것, 그때 ‘사쿠라’ 소리를 들어가며 한일 수교에 찬성했던 DJ가 오부치 선언을 이끌어내고 일본 문화 개방 결단을 단행한 것이다. 그 역사의 흐름은 이어가되,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대단한 결단을 한 것인 양 포장할 필요까진 없다.
강제징용 문제를 국제 중재위로 가져가지 않는 한 제3자 변제 외엔 뾰족한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다만 정치엔 논리뿐 아니라 감성의 영역도 존재한다. 어쩌면 감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 점에선 미흡했다. “국익 위한 결단”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 등의 수사보다는 이제라도 국민과 징용 피해자들에게 저간의 사정을 진솔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단 얘기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