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헬로 베이비’ 펴낸 김의경 시험관 시술 받으며 휴직-사직 난임병원 찾은 여성 7명 통해 점점 사회서 고립되는 상황 그려 “임신 실패 거듭하며 겪는 아픔, 인터넷카페서 견디는 힘 얻어요”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17일 만난 소설가 김의경은 “난임 병원에 다니는 또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헬로 베이비’를 쓰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이 나처럼 난임으로 고민하는 이들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너무 가난해 아이를 꿈꿀 수조차 없던 30대를 지나 이제야 숨통이 조금은 트였는데…. 노산이 되고 말았다. 2020년 1월 간절한 마음으로 난임 병원에 들어섰을 때 그의 눈앞에 ‘임신을 준비하는 자들의 세계’가 펼쳐졌다. 병원 대기실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진료실을 빠져나오는 여자들의 눈가에서 결과가 읽혔다. 이번에도 실패인지 유산인지….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소설가 김의경(45)이 13일 펴낸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은행나무)에는 그가 지난 3년 동안 난임 병원에서 만난 세상이 담겼다. 2014년 첫 장편소설 ‘청춘파산’(민음사)에서 엄마에게 빚을 물려받아 30대에 파산한 자전적 이야기를 전한 그는 이번에도 가장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꺼냈다.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17일 만난 그는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난임 병원을 찾는데, 왜 이들의 이야기는 여태 세상에 없었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며 “난임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역시 난임 병원에 다니는 동안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어 외로웠다”고 했다. 주기적으로 과배란 유도 주사를 스스로 몸에 놓고, 난자 채취를 비롯한 각종 난관을 이겨내며 10여 차례 시험관 시술에 도전했지만 실패만 거듭됐다. 그는 “난임 병원에 다니느라 본업을 뒤로 미뤘는데, 이러다가는 엄마도 작가도 못 되겠다는 불안감이 커졌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병원에서 만난 여성들도 같은 불안을 느꼈다. 그는 “난임 휴가를 받으면 직장에 폐를 끼칠까 봐 상당수는 휴직을 하거나 일을 관둔 채 임신을 준비한다. 일은 물론 사회적 관계까지 단절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2020년 1월 첫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얻은 아이를 잃은 그가 기댄 건 가족도 친구도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 ‘맘카페’였다. 그는 “이전에는 카페에 글을 쓰는 여자들을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유산을 한 뒤에야 아이를 잃은 아픔을 알아줄 데가 이곳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가 유산 경험을 털어놓은 글 아래엔 ‘공감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집 주소를 말해주세요. 보약을 지어 보낼게요.’ ‘엄마가 먼저 마음을 추슬러야 해요.’
그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과 나눈 대화가 나를 견디게 했듯,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도 서로가 서로를 견디게 하는 힘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난임 병원에서 만난 여성들을 단체 대화방에 모으는 소설 속 캐릭터 마흔네 살 프리랜서 기자 강문정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곁을 지킨다.
김 작가는 지금도 시험관 시술을 받고 있다. 그는 요즘도 틈날 때마다 맘카페를 찾는다.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한 여성의 안부가 궁금해서다. 그는 “10년 가까이 시험관 시술을 받아온 제 또래 여성이 요즘 카페에서 보이지 않는다”며 “그녀를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