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매공원에 국내 첫 조형물 설치 장기기증인-유가족-이식인 뜻하는 혈액 상징 붉은색 구 3개 쌓은 형태 “아들 생각에 울컥… 늦었지만 감사”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 국내 첫 장기 기증 기념 조형물이 서 있다. 조형물의 구 3개는 장기 기증자와 유가족, 그리고 이식인을 각각 상징한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23년 전 이맘때 세상을 떠난 아들 생각이 나 울컥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공간이 생겨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기 기증인 유가족 모임 ‘도너패밀리’ 회장 강호 씨(68)는 최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을 찾았다. 장기 기증인의 뜻을 기리고 장기기증운동을 기념하는 국내 첫 조형물이 설치됐다는 말을 듣고서다.
강 씨의 아들 석민 군은 2000년 3월 다발성 뇌출혈로 1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강 군은 각막, 폐, 심장 등 9개의 장기를 기증해 8명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강 씨는 20일 통화에서 “조형물을 보는 순간 아들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며 “아직도 매일 아들 생각이 난다. 같은 처지인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이 위로를 나누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19일 오후 보라매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낯선 조형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기자로부터 조형물의 의미를 전해 들은 시민들은 “뜻깊은 공간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관악구민 권모 씨(60)는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 등은 조만간 조형물 옆에 현판을 세우고 기증인들의 이름을 새기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또 다음 달 12일 보라매공원에서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함께 완공식을 개최한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국내에 약 7000명의 뇌사 장기기증인이 있고, 유가족은 3만 명 이상”이라며 “유가족들이 국내 첫 기념조형물 건립 및 기념공간 조성을 통해 위로를 받고 자긍심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본부는 2017년 기증인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뒤 기념공간 조성 사업을 추진해 왔다. 서울시는 2020년부터 부지 선정을 위한 연구 용역을 수행했으며 지난해 6월 보라매공원 심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조형물 설치 및 기념공간 조성 사업을 진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