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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민감정보 담긴 ‘의료 빅데이터’ 활용 감시 절실하다

입력 | 2023-03-22 03:00:00

정부, 디지털헬스케어법 추진 속도
데이터 수집 등 감시 방법 아직 없어
의약계는 데이터 유출 가능성 우려
“이해관계자와 사회적 합의 우선해야”



게티이미지코리아


2월 15일 디지털 치료제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를 받았다. 에임메드사(社)에서 개발한 불면증 증상 개선 애플리케이션(앱)인 ‘솜즈(Somzz)’다. 국내에서 디지털 치료제가 허가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건복지부도 이런 흐름에 맞춰 규제 개혁 추진 의사를 밝혔고 2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전략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도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어줬다. 바이오헬스 산업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헬스케어법 추진하는 정부
윤 대통령은 “의료·건강·돌봄 서비스 등을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해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집중 투자해야 한다”며 “벤처기업과 청년이 바이오헬스 분야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한국판 ‘보스턴 클러스터’ 조성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 보스턴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과 연구소,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하버드대학 등 주요 대학과 벤처기업 등이 몰려 있는 바이오 분야 대표 클러스터다.

또한 바이오헬스 성장은 데이터 활용에 달려 있다면서 관련 제도 개선도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가명 정보화, 비식별화해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면서도 바이오헬스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국회에 계류된 ‘디지털헬스케어법’의 조속한 처리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은 국회 보건복지위 강기윤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이다. 국무총리 산하에 디지털헬스케어정책 심의위원회를 둘 수 있게 허용하고 보건의료데이터 가명처리 범위·방법·절차 등을 법률로 규정해 빅데이터 연구를 활성화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특히 신규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서비스·기술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거쳐 보건의료 정책에 반영하는 제도 개선 절차 마련과 디지털 헬스케어 특화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신설하는 조항도 담았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선진국인 미국에선 2017년 처음으로 디지털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허가를 받았다. 국내 기업들은 여기에 비교하면 최소 6년 정도 느린 셈이다. 국내에서 처음 허가받은 제품인 솜즈는 불면증 치료를 위한 제품인데 미국에서는 이런 정신질환에 관련된 디지털 치료제는 물론이고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 관리, 통증 완화를 위한 물리치료, 심지어는 마약 중독 치료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까지 허가했다.

우리나라의 의료 데이터는 실질적으로 전 국민 의료 데이터를 건강보험공단이 다 가졌다고 할 정도로 규모가 방대하다. 장기간의 의료 이용 기록과 질병 이력이 나와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빅데이터이다 보니 이를 활용해 디지털 치료제는 물론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논리다.

문제는 개인의 의료 기록이 굉장히 민감하고 내밀한 개인정보라는 점이다. 의료 데이터에 대한 비식별 처리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데이터 유출이나 개인을 특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두고 의약계 시민단체는 반대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도 원칙에 따라 연구 목적으로만 제공한다는 식으로 간접적인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의료 데이터 공유는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카카오, 의료 데이터 공유 서비스 출시
카카오헬스케어는 2일 판교 카카오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첫 프로젝트인 ‘감마(GAMMA)’와 ‘델타(DELTA)’를 발표했다.

감마 프로젝트는 당뇨병, 전당뇨병 환자에 대한 혈당 관리 서비스 플랫폼이다. 연속혈당측정기(CGM)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와 연동해 사용자가 좀 더 간편하고 쉽게 혈당 추이를 관리할 수 있게 한다. 해당 플랫폼은 올해 3분기경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델타 프로젝트는 의료 데이터 공유 서비스다. AI 신약 개발 등 제약바이오 업계 내 데이터 필요 산업이 생겨나면서 곳곳에 산재한 의료 데이터에 대한 표준화와 공유 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카카오는 의료기관이 보유한 양질의 임상 데이터와 의무 기록들을 표준화해 인공지능과 대규모 머신러닝 등을 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솔루션과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내 대형 병원을 대상으로 파일럿 프로젝트에 착수한 상태며 이르면 5월경 관련 시스템을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민감 데이터에 대한 우려는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 FL)을 통해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는 “이전에는 알고리즘을 보유한 기관으로 모든 데이터를 집합시켰다면 이제는 알고리즘을 데이터를 보유한 기관으로 보내 관련 학습을 시킬 수 있다”며 “우리는 FL을 활용해 카카오 내부에 의료 로우 데이터를 쌓는 것을 최소화하고 FL을 통해 학습된 결괏값만 수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현행법과 충돌 가능 사회적 합의도 불충분”

애플리케이션으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헬스케어 기업의 민감정보 수집 동의서. 기업은 서비스 이용자의 동의를 받아 환자의 진료기록, 영상검사 결과지, 진단서, 처방전, 각종 건강 데이터 (혈압, 혈당, 심박수, 체온), 복용약물 등을 수집 보관하게 된다.디지털헬스케어 민감정보 수집 동의서 캡처

기업은 이렇게 움직이는데 국회 발의된 디지털헬스케어법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한현욱 차의과학대학 의학전문대학 정보의학교실 교수(분당차병원 의료정보빅데이터센터 부센터장)는 “의료 빅데이터를 공유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국회 주도의 일방적인 입법이 아닌 의료계, 시민사회 단체, 법조계, 정보보호전문가 등 이해관계자 논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현재는 민감 데이터를 수집·보관하는 기업에서 알아서 조심하길 바랄 뿐, 목적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한들 사전에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상태”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의료계는 해당 제정 법안이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 현행법과 충돌할 소지가 다분한 데다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진흥을 국민 건강보다 앞세우는 정책을 촉진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디지털헬스케어 기술 확산으로 의료 환경에 빠르고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 절차가 선행되지 않았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의료계는 보건의료 관련 법안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진흥을 위한 법안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 생명·건강을 후순위 배치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의협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결과물의 안전성이나 유효성에 대한 객관적 검증 없이 단순히 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 생명·건강을 담보로 잡는 것”이라며 “신중하게 추진돼야 하며 기술 확산으로 의료 환경의 상당한 변화가 수반될 수 있어 사회 전반의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의료계는 현행법이 개인정보보호법을 기본법으로 국민 진료 정보와 진료 기록 등은 의료법으로, 연구 목적 보건의료 데이터 2차 이용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로 이미 상세하게 규율하고 있다고도 했다.

의료계는 법안의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촉진 조항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의료 데이터 활용 기관이 되려면 복지부 장관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자격 요건으로 ‘사업계획 및 전송 대상 데이터 수집·활용 계획이 타당하고 건전할 것’을 내건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의협은 “국민의 유전 정보까지 포함한 민감 개인정보를 다루게 될 기관의 자격 요건으로는 내용이 불명확하며 법률로서 명확성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대외적으로는 공공 이익을 위한 의료 데이터 활용을 내걸고 실질적으로는 사익 추구를 위해 의료 데이터를 쓰는 기관이 난립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의료 마이데이터, 정부-의료계 협력해 구축해야
정부가 발표한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 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 혁신 방안 모두 의료 마이데이터 추진 전략을 비중 있는 과제로 다뤘다.

의료 마이데이터는 개인이 자신의 의료정보를 적극 관리·통제하고 이를 개인 주도로 건강관리 등에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 곳에 분산된 개인 건강 정보를 한곳에 모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를 환자가 주도적으로 의료진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도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 마이데이터 구축 사업이 2021년 초부터 ‘건강 정보 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여러 의료기관에 분산된 개인 의료 데이터를 본인이 원하는 곳 어디로든 표준화된 형태로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중계 시스템을 정부 주도로 구축해 왔다.

의료 마이데이터 시대가 오면 과거 진료 기록 등을 활용한 정밀 진단과 의료 서비스 혁신이 가능해진다. 의료와 생활 습관 데이터를 결합해 고도화한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나 돌봄 서비스 개발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숫자로 이뤄진 금융 데이터와 달리 의료 데이터는 텍스트·이미지·영상까지 비정형 데이터로 구성된다. 병원마다 쓰는 용어·코드·장비도 모두 다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의료 정보 표준화를 시도했지만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다. 소유권과 보상 논쟁도 여전하다. 민감 정보라는 의료 데이터 특성도 어려움을 더하는 요소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