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용 여행작가가 들려주는 하동 십리벚꽃길
이두용 여행작가
벚꽃 비 쏟아지는 눈부신 사랑의 길
4월 초 하동의 벚꽃 축제가 시작된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6㎞ 구간에 매년 봄 십리를 잇는 동화 속 꽃물결이 펼쳐진다. 이두용 여행작가 제공
가수 조영남의 유일한 히트곡인 ‘화개장터’의 노랫말에 등장하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르는 화개장터’. 정확하게도 화개장터를 시작으로 겨우내 언 가슴을 녹이는 하동의 벚꽃 축제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6㎞ 구간에 매년 봄 십 리를 잇는 동화 속 꽃물결이 펼쳐지는데 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다.
십리벚꽃길은 혼례길이라는 별명도 있다. 꽃비 내리는 시기에 남녀가 이곳을 거닐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한다. 그 이유에서인지 봄엔 이곳을 찾는 커플이 많다. 살랑이는 따뜻한 바람과 눈부신 벚꽃의 향연을 마주하면 없던 사랑도 생겨날 것 같다.
올봄엔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화개장터벚꽃축제’도 열린다.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단 3일이니 날짜만 맞는다면 이때 찾는 게 좋다.
1200년 역사의 대한민국 차(茶) 부심
하동 차밭
하동은 고려시대인 13세기 전반에 차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엔 국내를 넘어 중국에 전했을 만큼 최고의 차 생산지로 손꼽혔다. 당대의 문인들이 시를 통해 앞다퉈 하동의 차를 칭찬하기도 했다.
굽이진 섬진강 따라 이어진 십리벚꽃길 맞은편에 언덕마다 파릇파릇한 차밭을 조망할 수 있어 벚꽃과 함께 봄의 향기를 흠뻑 느끼기에 좋다. 따뜻하고 향 가득한 차 한 잔은 여행의 마무리로 최고.
5월엔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도 열린다. 차에 자부심 강한 하동에서 작정하고 준비한 행사다. 5월 4일부터 8일까지 열리는데 크고 작은 부대행사도 준비돼 있어서 눈여겨볼 만하다.
호랑이가 안내한 곳에 절을 세우다
쌍계사
쌍계사는 역사도 깊은데 신라 성덕왕 23년(714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대비와 삼법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나라에서 유학 중이던 삼법이 선종의 6대조인 혜능 스님의 정상(頂相, 머리)을 가지고 귀국했다. 정상 모실 곳을 찾던 중 꿈에서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 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계시를 받고 오늘의 하동을 찾아왔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자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안내했고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에 도착해 절을 지었다고 한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구층 석탑이 눈에 띈다.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3과와 전단 나무 불상 1존을 모시고 그 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기도하는 신자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쌍계사는 하동의 차(茶) 역사와도 인연이 깊은데 근처에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 ‘해동다성진감선사추앙비’ ‘차시배지(茶始培地)’ 등의 기념비가 있다. 최초 하동에 차를 가져온 것도, 키우고 마시기 시작한 것도 쌍계사의 시작과 관련이 있고 스님들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하동의 명소가 인연의 고리로 연결된 것 같아 재밌다.
뽀얀 국물에 영양 가득한 봄 제철 음식
재첩국
재첩국은 요리도 쉽다. 재첩과 깨끗한 물, 파와 부추만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서 끓이면 끝이다. 뽀얀 국물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 뜨거운 국물을 ‘시원하다’라고 하는 건 우리나라 사람만 아는 정서인데 재첩국이 딱 그 맛이다. 크기는 바지락보다 10배 정도 작지만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아 숙취에 좋고 바지락이나 다른 조개에 비해 영양가도 몇 배나 높다고 한다. 예전엔 ‘조개의 보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소 심심한 맛이지만 하동의 명물이니 여독을 풀며 한 그릇 뚝딱 하면 포만감에 기분까지 좋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