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 리그 경기를 뛴 뒤 20일부터 경기 파주 축구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시작된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에 합류해 훈련한 오현규(가운데). 대한축구협회 제공
축구화를 급히 매면서 선수단을 바라보던 오현규는 깔개를 들고 뛰어가 “안녕하십니까”라고 큰 소리로 인사했다. 곧 깔개를 바닥에 깔고 누워 베르너 로이타드 피지컬 코치의 지시에 따라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팀 공식 훈련을 마치고 ‘자율 훈련’ 시간이 주어지자 오현규는 황인범(올림피아코스), 조규성(전북), 나상호(서울) 등과 볼 뺏기 훈련 등을 했다. 대표팀 관계자는 “예정보다 한참 빨리 왔다. 인천공항에서 여기까지도 날아온 것 같다”라며 웃었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때 오현규는 당시 눈 주변 골절 부상을 당한 손흥민(토트넘)의 예비 멤버로 최종 엔트리 26명과 함께 카타르에 동행했다. 조별리그 첫 경기 시작 24시간 전까지 최종 엔트리 수정이 가능했기에 오현규의 대표팀 승선 가능성이 0%였던 건 아니었다. 손흥민뿐 아니라 황희찬(울버햄프턴)도 햄스트링 부상을 안고 있어 황희찬의 대체자로도 언급됐다. 파울루 벤투 전 대표팀 감독은 만약의 가능성을 염두하고 훈련을 진행했다. 끝내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지만 오현규는 26명 선수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메기 역할’을 충실하게 했고 한국의 월드컵 여정이 끝날 때까지 선수단과 함께 훈련했다.
19일 열린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에서 1-1로 맞서던 후반 36분 결승골을 넣고 기뻐하는 오현규(오른쪽). 이날 오현규의 소속팀 셀틱은 하이버니언에 3-1로 승리하고 리그 9연승을 달렸다. 사진출처 셀틱 홈페이지
스코틀랜드 매체 ‘더 셀틱 웨이’는 오현규가 골을 넣은 장면에 대해 ‘오현규를 위한 전술’이라고 짚으며 “셀틱이 그동안 창의력이 부족했는데 오현규에 의해 훌륭하게 마무리된 ‘코너킥 루틴’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평가했다. 오현규가 골을 넣은 상황을 보면 코너킥 때 오현규 옆에 셀틱 선수 2명이 더 있었다. 이들이 각자 수비수를 달고 다른 곳으로 움직여 오현규에게 공간을 열어줬고 오현규가 남은 수비수와의 몸싸움을 이겨내며 머리를 갖다댔다. 엔지 포스테코글루 셀틱 감독은 “훈련할 때 오현규가 페널티지역 안에서 존재감이 있다는 걸 느낀다. 오늘도 ‘피지컬’로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극찬했다.
오현규의 눈에 띄는 활약은 기존 대표팀 주전 공격수들과도 비교된다. 월드컵 때부터 경기 감각 저하 우려를 샀던 황의조(서울)는 6년 만에 K리그로 복귀해 골 감각을 끌어올리려 하지만 아직 득점이 없다. 지난 시즌 K리그 득점왕 출신으로 카타르 월드컵 가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한국선수 최초로 멀티 골을 넣은 조규성도 이번 시즌 K리그에서 필드골 득점이 없다. 20일 대표팀 첫 소집 때 ‘오현규의 활약으로 공격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부담되지 않냐’는 질문에 조규성은 진지한 표정으로 “경쟁은 축구를 하면서 당연히 겪게 된다.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크게 부담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등번호를 못 받은 채 월드컵을 경험했던 오현규는 월드컵 멤버들이 대부분 포함된 이번 대표팀 명단에 정규멤버로 들어간 기쁨을 소집 첫날 먼 길을 달려와 훈련에 합류하는 행동으로 표현했다. 이런 오현규의 의욕이 새 코치진의 눈에 안 들었을 리 없다. 오현규가 등장하자 가장 가까이에 서있던 안드레아스 쾨프케 골키퍼 코치가 오현규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리며 반겼다. 소집 이튿날 취재진과 만난 오현규는 “장거리 비행으로 시차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대표팀에 들어온 건 처음”이라면서도 “새로운 경험으로 작년보다 한층 성장했다고 스스로 느낀다. 이번에 등번호를 달게 돼 감사하는 마음이다. 셀틱에서 잘해온 것처럼 (클린스만) 감독님 앞에서도 잘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