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창업 이래 76년 동안 ‘인화(人和)’ 정신을 이어온 LG그룹이 구본무 선대회장 별세 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재산권 분쟁에 휘말렸다. 현 구광모 회장의 모친인 김영식 여사, 여동생들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 등 세모녀가 지난달 말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재산을 다시 나누자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특히 세 모녀는 구본무 선대회장이 보유했던 ㈜LG 주식을 법정 비율대로 나눠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 지주회사인 ㈜LG 지분율 분산과 이에 따른 경영권 분쟁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그러나 지난 76년 동안 LG는 창업주 구인회 회장으로부터 구자경→구본무→구광모 회장으로 이어지는 그룹 승계 과정에서 단 한번의 재산권 분쟁도 벌어지지 않았다. 구자경 회장은 형제 자매가 6남4녀였고, 구본무 회장도 형제자매가 4남2녀에 달했다.
일부에선 그룹 지주회사인 ㈜LG 지분은 특정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장자 승계’라는 LG그룹의 대원칙에 따라 세 모녀 같은 특정인이 재상속을 해달라고 주장할 대상이 아니라는 지적도 들린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별세한 구본무 선대회장이 남긴 재산은 ㈜LG 주식 11.28%를 비롯해 2조원 규모였다.
이중 구 선대회장이 보유했던 ㈜LG 주식 11.28%(1945만8169주)는 구광모 회장 8.76%(1512만2169주), 구연경 대표 2.01%(346만4000주), 구연수씨 0.51%(87만2000주)로 각각 분할 상속됐다. 구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는 한 주도 관련 주식을 상속받지 않았다. 단 김 여사는 상속 전 ㈜LG 주식 4.2%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 법에 규정된 상속비율은 김 여사 3.75%, 구광모 회장, 구연경 대표, 구연수씨는 각각 2.51%이다. 그러나 ‘장자 승계’라는 그룹 원칙에 따라 구 선대회장은 구광모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줬다. 상속인들에게 법적 상속비율대로 지분을 나눠 줄 경우 그룹 지배구조의 구심점을 흔들 수 있어서다.
이 같은 배정은 LG그룹의 오랜 전통이다. 실제 구자경 회장은 1969년 12월 창업주 구인회 회장 별세 후 1970년 1월 LG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당시 구자경 회장의 형제자매는 6남4녀로 구인회 창업주의 부인인 허을수 여사까지 포함하면 상속인은 11명에 달했다.
만약 이들이 ‘1.5(배우자) 대 1대 1’이라는 법적 상속비율을 고수했다면 LG그룹의 지배구조는 샅샅이 분산됐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러나 10명이 넘는 이들 상속인은 법적 상속비율 대신 ‘장자 승계원칙’에 따라 구자경 회장에게 지배구조를 몰아줬다. 이 과정에서 오너 일가 중 단 한 명도 상속재산을 다시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구인회 창업회장의 동생이자 LG 창립 멤버였던 구철회 사장은 경영 퇴진을 선언했고, 구철회 사장의 자식들은 1999년 LG화재로 독립해 LIG그룹을 출범시켰다. 구 창업회장의 동생인 구태회·평회·두회 형제 일가는 2003년 계열 분리해 LS그룹을 만들었고, 구 창업회장과 사돈 관계였던 허씨 가문은 아예 GS그룹으로 사세를 분리했다.
이후 구본무 회장으로 승계가 이뤄졌던 상속도 장자 승계 원칙은 철저히 지켜졌다. 당시 상속은 그룹 지주회사인 ㈜LG가 설립된 이후여서 상속 재산의 후계 구도가 한층 명확했다.
구본무 회장은 4남2녀의 장남으로 상속인은 7명에 달했다. 그러나 이 과정의 상속도 ‘장자 승계’라는 대원칙 아래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상속재산이 “적다, 많다” 같은 잡음은 전혀 없었다.
◆“최대주주 지분=가산…20년 간 판 적 없어”
이같은 LG 오너일가의 ‘장자 승계’ 가풍은 상속재산 중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LG 지분만큼은 개인 소유가 아니라 ‘가산’이라는 원칙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LG 오너일가에서 ㈜LG 지분을 물려받은 최대주주는 이 지분을 단 1주도 판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 공시 자료에 따르면 현재 ㈜LG 최대주주는 구광모 회장이며, 그 뒤로 구본식 LT그룹 회장 4.48%, 김영식 여사 4.20%,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3.05%, 구연경 대표 2.92%, 구본준 LX그룹 회장 2.04%, 구연수씨 0.72% 등을 보유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LG 최대주주인 구본무 선대회장과 구광모 회장은 보유한 LG 지분을 개인적으로 팔아 사유의 목적으로 쓴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이 지분을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 필요한 LG그룹 공동의 자산이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