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혐의로 기소된 네타냐후 총리 ‘사법부 무력화 법안’ 내달 처리 추진, 비난 커지자 “일부 수정, 처리 연기” 야권 “사법부 장악 위한 꼼수 후퇴”… 국방장관도 “법안 강행땐 사임” 반발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19일 예루살렘의 총리실에서 열린 각료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우파 연정의 ‘사법부 무력화 법안’에 대한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국방장관은 최근 이 법안을 계속 강행할 경우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예루살렘=AP 뉴시스
지난해 12월 말 재집권한 ‘중동의 스트롱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취임 직후부터 추진했던 ‘사법부 무력화 법안’의 처리 기한을 미루고 일부 내용을 수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 법안이 부패 혐의로 기소된 본인을 위한 ‘방탄용 입법’이자 삼권분립의 근간을 해친다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우방인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우려를 표하는 등 안팎의 비난이 고조되자 ‘1보 후퇴’를 택했다.
다만 네타냐후 총리 측은 “처리 시한을 미뤘을 뿐 입법은 강행한다”는 뜻을 고수했다. 그러자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연정 내부에서조차 반대 여론이 나오고 있다. 야권 또한 헌법소원,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예고해 당분간 이를 둘러싼 혼란이 극심할 것으로 보인다.
● 바이든 경고 하루 만에 1보 후퇴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20일 성명을 통해 그가 이끄는 극우 연정이 발의한 사법부 무력화 법안 중 일부를 수정하고, 다음 달 2일 전까지 통과시키겠다던 기존의 처리 기한 또한 미루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19일 “이 법안은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반대파와 타협하라”는 취지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지 하루 만이다. 이날 네타냐후 정권은 법관 임명에 관한 부분에서만 한 발짝 물러섰다. 기존에는 야권이 추천하는 법관 추천위원회의 인사가 11명 중 1명에 불과했지만 이를 2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대법원이 의회가 만든 법의 적법성, 행정부의 각종 조치를 심사하지 못하도록 한 내용 또한 처리 시점을 늦추기로 했다.
● 국방장관 “법안 강행하면 사임”
야권은 일부 수정에도 불구하고 법안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꼼수 후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법안 수정이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악의적 의도를 더 담고 있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대법원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식으로 맞서겠다고 밝혔다. 연정 내부의 반대 여론도 심상치 않다. 현지 매체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속한 집권 리쿠드당 소속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최근 총리에게 “현 법안을 계속 추진하면 장관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연정 내부에서 사법부 무력화 입법을 문제 삼아 사임 의사를 거론한 사람은 갈란트 장관이 처음이다. 이는 공군, 해군, 특수부대 출신의 일부 예비역 군인들이 네타냐후 총리를 “독재자”라고 비판하며 법안 강행에 전방위적으로 반발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유대 극우 민족주의, 친미, 반이란 등의 노선으로 유명하다. 이스라엘 헌정사상 최장수 집권 총리이며 이번이 3번째 집권이다. 1996∼1999년 처음 총리를 지냈고 2009∼2021년 다시 집권했다. 이후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 등 가족의 각종 부패 혐의로 실각했지만 지난해 말 총선에서 승리해 세 번째로 취임했다. 이번 법안이 시행되면 네타냐후 총리가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도 그를 총리직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