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한국의 박진 외교부 장관은 대법원이 판결한 일본의 징용 피해자 배상금을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대신 부담하는 ‘제3자 변제’ 해결책을 6일 발표했다. 이에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상 또한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일본 정부의 반응보다 눈에 띄는 것은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호응이었다. 한일 정부의 발표를 확인하자마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협력과 파트너십의 혁신적인 새로운 장”이라고 칭송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한미일 3국 관계를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비전의 중심”이라고 했다.
다음 날 한미 양국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4월 26일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분명 한미 양국 지도자들의 전략적 결정이다. 윤 대통령은 16, 17일 일본을 찾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와도 정상회담을 했다.
이어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나카소네 총리는 미일 관계를 ‘운명 공동체’라고 표현했다. 신냉전하에서의 대(對)소련 방위 구상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도 말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나카소네 외교의 전략성을 높이 평가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 통해 당시 한미일 3국 지도자 사이에서는 전략적 공조가 형성됐다. 이는 옛 소련이 1987년 12월 ‘중거리 핵전력폐기조약(INF)’에 서명할 때까지 견고하게 유지됐다.
당시와 현재의 다른 점은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 일각에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합의, 특히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에 대한 트라우마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 측의 결정을 구속하고 있다.
당시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는 10억 엔을 출자했지만 그때 출범했던 ‘화해-치유재단’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당시 외상이 기시다 총리다. 이번 윤 대통령의 방일에도 일본 측에서 ‘선의의 호응’이 약한 것은 그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한미일의 전략적 협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다. 국회 질의에서 “현재의 전략적 환경을 감안하면 한일, 미일, 한미일의 긴밀한 협력의 중요성은 논할 필요도 없다”고만 답했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위안부 합의 실패의 트라우마가 일본 외교의 전략적 유연성을 앗아간 것이다.
더 문제는 한국 여론의 분열일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한 한국 국민의 평가는 그리 높지 않다. 반대는 60%에 달하지만 찬성은 40%에 못 미친다. 전략성이 결여된 일본 측의 ‘냉담한 반응’ 또한 한국 측의 이해를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적했듯 이번 대일정책 결정과 윤 대통령의 방일은 윤 정부의 대미정책 일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한미 정상회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는 한미일의 전략적 협력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따라 또 달라질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경하게 반응하면 윤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한 지지가 늘어날 수 있다.
한일 정상의 셔틀 외교가 재개되면 양국 간 소통과 협력은 급속도로 깊어질 것이다. 윤 대통령이 주창하는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한일 관계’가 궤도에 오르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한 한일의 새로운 정체성이 역사 마찰을 완화하거나 해소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