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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회사원이 세계적 패션일러스트레이터로…한 청년작가의 당찬 도전[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입력 | 2023-03-25 14:00:00

[3]‘자기만의 길 개척해나가는 청년’ 김재석 패션일러스트레이터(상)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

패션일러스트레이터 김재석 작가는 구찌와 디올, 펜디 등 세계적인 명품브랜드 가운데 협업을 하지 않는 회사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패션업계에서 각광받는 아티스트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잘 지키면서도 해당 브랜드를 깊이 이해하고 상품적 가치도 높이는 균형점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사진제공 김재석 작가

“당신이 열정의 대상이라면 창문을 박차고 뛰어내려라. 열정을 느낀다면 그것에서 도망쳐라. 열정은 지나고 지루함은 남는다.”(패션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

MZ세대에게 ‘부캐’는 이제 일상용어다. “부(副) 캐릭터”의 줄임말인 부캐는 원래 게임에서 주로 쓰지 않는 보조적 캐릭터를 일컫는 신조어. 이게 TV예능 등에서 기존 정체성과 다른 두 번째 인격이란 의미로 쓰이더니, 개그맨 김경욱의 ‘다나카’처럼 부캐가 도드라지는 경우도 잦아졌다. 요즘은 일반인도 유튜브 등에서 부캐로 활동하는 이가 적지 않다.

패션업계에도 이런 부캐와 함께 세계적 관심을 받는 젊은 한국인 아티스트가 있다. 패션일러스트레이터 김재석 작가(36)다. 패션 일러스트란 카메라로 찍는 패션사진처럼 그림으로 그린 화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수수걸’은 일종의 부캐이자 페르소나라 할 수 있다. 수수걸은 불가리 까르띠에 피아제 같은 명품브랜드는 물론 삼성 현대 신세계 등 국내외 기업과 협업한 작품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패션 전공도 아니고 취미 삼아 그림을 그렸던 김 작가는 어떻게 글로벌 패션·광고계가 주목하는 특급 패션일러스트레이터가 됐을까.

-패션업계에선 유명하지만, 아직 생소할 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하하, 당연하죠. 모르는 분들이 훨씬 많죠.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는 김재석이라고 합니다. 열 살 때 호주로 이민 가서 UTS(시드니공과대학)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우연히 한국에서 작게 여성가방 사업을 시작했는데, 브랜드 이름이 ‘수수(SUSU)’였어요. 가방 홍보하려고 일러스트를 그렸는데, 당시 그림에 등장한 여성캐릭터가 수수걸의 모태가 됐습니다. 지금은 수수걸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디지털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김재석 작가의 작품 컬렉션. 작가의 뮤즈라 할 수 있는 캐릭터 수수걸이 생화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이채로우면서도 산뜻하다.  사진제공 김재석 작가

-원래 전공이 패션은 아니군요.

“네, 어릴 때부터 디자인에 관심 많았지만, 호주는 패션 분야가 발달한 나라는 아니에요. 그땐 본격적으로 패션에 뛰어들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 인테리어 쪽을 선택했어요. 하지만 졸업 뒤 1년 정도 호주 인테리어 회사를 다녔는데 저랑 맞지 않는다는 걸 느꼈죠. 그래서 패션 선진국인 한국에 왔어요. 지금도 부모님은 ‘너 하는 일 계속 하면 밥 먹고 살 순 있는 거니’라고 하시죠, 하하.”

-부모님은 패션 작가가 될 거라 생각하진 않으셨나 봅니다.

“워낙 미술을 좋아해서 비슷한 계통의 일을 하리라 짐작은 하셨던 것 같아요. 다만 패션 쪽으론 문외한이시라, 제가 아니었다면 이쪽에 관심은 없으셨겠죠. 그래도 자식이 하고 싶은 걸 막거나 강압하시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좋아하는 거라면 하고 살아야지’라고 믿고 지켜봐주시는 분들이에요.”

-왜 호주가 아닌 한국에서 가방브랜드를 론칭한 건가요.

“호주에선 10대 남자라면 럭비 같은 스포츠가 가장 큰 관심사예요. 근데 전 스포츠는 젬병이었고, 패션 특히 가방에 관심이 컸어요. 가방을 시험 제작하고 싶은데, 호주는 디자인이 있어도 제작업체를 구하기 어려워요. 회사 관두고 한국에 놀러왔다가 시장조사를 좀 해보니, 한국은 동대문도 있고 관련 인프라가 워낙 잘 돼 있었어요. 적은 비용으로 창업하기에 나쁘지 않은 환경이죠.”

-그때 탄생한 게 수수걸이군요.

“정확하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어요. 가방은 어떻게든 만들었는데, 가진 돈은 없고 펀딩도 어려우니 광고할 방법을 찾기 힘들었어요. 패션 화보 찍을 예산조차 없었죠. 그래서 차라리 직접 그림을 그려서 세상에 알려보자. 여성가방이니까 거기에 맞는 모델을 창조하자는 의도였어요. 가상의 인물인 수수걸이 가방을 매고 생활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브랜드 스토리를 알려보고 싶었습니다.”

김재석 작가는 여러 프로젝트에서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이 담긴 수수걸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자신이 여행을 갈 때도 수수걸은 언제나 함께 한다. 프랑스 명품 향수 브랜드 트루동 매장 앞에서 포즈를 취한 수수걸의 모습.  사진제공 김재석 작가   

-가방사업은 그리 성공을 거두진 못했습니다.

“네, 역시 돈이 없으니…, 하하. 첨부터 모험이라 여겼기 때문에 크게 낙담하진 않았어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해보자하는 마음이었죠. 물론 잘 됐으면 브랜드를 키워 갔겠지만, 패션 쪽으로 경력이 없으니까 큰 기대는 하질 않았거든요. 당시엔 거창하게 ‘도전’한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내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여겼죠. 그걸 계기로 패션 일러스트란 또 다른 문이 열린 거니까요.”

-자신의 천직을 찾는 계기는 된 거군요.

“그렇죠. 뭔가를 좋아하는 것과 그걸 직업으로 하는 건 전혀 다른 거니까요. 하지만 그때도 패션 일러스트가 ‘돈’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사실 패션을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건 1950, 60년대 방식이에요. 실제 모델과 사진, 영상이 대세니 그림은 한물 간 취급을 받았어요. 그래서 전업 작가는 꿈도 못 꾸고, 한국에서 패션 관련 회사에 취직을 준비했죠. 다행히 디자인 전공에 가방브랜드 론칭 경험이 있고, 영어가 가능하다는 게 플러스 점수를 받아서 패션광고회사에서 일자리를 구했어요.”

-5년 정도 회사를 다녔다던데 당시엔 작품 활동은 안 한 겁니까.

“정말 그땐 취미생활에 가까웠어요. 한국에서 회사생활은 어디라도 힘들겠지만, 패션광고 쪽은 장난 아니거든요. 평일엔 거의 매일 야근이어서, 짬 낼 시간은 주말에 잠깐 뿐이었어요. 대신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다보니 맘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죠. 수수걸의 아이덴티티(정체성)는 이때 어느 정도 완성된 거 같아요. 그렇게 만든 작품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며 지인들과 공유하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미국 백화점체인 ‘블루밍데일스’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진짜 깜짝 놀랐죠.”

김재석 작가가 미국 뉴욕을 대표하는 유명백화점 블루밍데일스와 협업한 작품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선보인 이 작품들은 작가가 패션일러스트레이터로서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사진제공 김재석 작가

-경력도 없는 신인을 해외의 유명회사가 어떻게 알아봤을까요.

“그게 소셜미디어의 무서운 점인 거 같아요. 블루밍데일스가 협업했던 게 2010년인데, 이미 그때 외국에선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방식이 꽤 자리 잡고 있었어요. 블루밍데일스도 그해 크리스마스 캠페인 프로젝트를 기성작가가 아닌 신선한 아티스트와 하려고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운 좋게 저한테 기회가 온 거였죠. 경력이 부족한데도 작품 그 자체로 평가하고 작가의 창의성을 적극 반영해줘서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은 겁니까.

“전혀 아니에요. 회사를 몇 년은 더 다녔어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블루밍데일스와의 작업 결과물이 반응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신데렐라처럼 인생이 바뀌진 않았어요. 여전히 아직 검증 안 된 신인작가인 건 그대로였죠. 다만 근사한 프로젝트를 해냈으니, 제 커리어에 좋은 주춧돌 하나를 잘 놓은 거죠. 제 입장에서도 이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단 걸 배웠고, 그때 다니던 회사에서 ‘넥스트 스텝(다음 단계)’을 준비할 무기를 마련한 셈이었고요.”

-요즘 세대 표현처럼 ‘노예 탈출’을 꿈꾼 건가요.

“하하, 어느 정도 맞는 말이네요. 아시겠지만 패션 쪽이 유명 디자이너나 모델이 아닌 이상, 엄청난 박봉이거든요. 일개 사원은 거의 ‘열정 페이’만 받고 일하는 수준이죠. 근데 매일 새벽에 녹초가 돼서 집에 들어가는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이러다 빨리 죽겠구나 덜컥 겁도 났어요. 호주에서 직장을 다녀봐서 더 크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사회생활은 정말 영혼을 갈아 넣는 수준인 거 같아요. 물론 장점도 있지만, 의사결정 구조 같은 것도 좀 답답한 부분이 많고요. 패션 일러스트라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회사를 관둔 첫 번째 이유지만, 일이 편했다고는 차마 말 못하겠네요.”

김재석 작가가 프랑스 명품브랜드 까르띠에와 협업한 작품. 사진제공 김재석 작가

-지금도 여러 기업과 협업을 하잖아요. 한국과 외국 회사들이 많이 다릅니까.

“말씀드리기 조심스럽긴 한데, 각자 장단점이 있긴 해요. 한국 회사들은 정말 일처리가 시원시원하죠. 일을 우선해서 휴일에도 의사소통이 잘 되고요. 해외 기업은 마감 직전인데도 연락이 안 되는 일이 허다하니까요. 다만 한국은… 윗선의 입김이 너무 세다고 할까요. 담당자들과 다 합의해서 진행하던 일도 임원 같은 분들이 틀어버리면 다 ‘리셋’되는 경우들이 생겨요. 물론 결정권자의 의견이 중요하지만, 현장 목소리가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전업 작가가 된 뒤엔 그런 스트레스는 줄었겠네요.

“그 역시 장단점이 있죠. 확실히 수입은 회사 다닐 때보다 낫고, 스스로 일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죠. 하지만 업계 트렌드를 꼼꼼히 체크하면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는 건 적지 않은 부담이에요. 게다가 이젠 기업이 저의 고객이잖아요. 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클라이언트가 뭘 원하는지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야 해요. 오히려 시키는 대로 할 때보다 더 조심스러울 때도 많아요. 다행히 좋아서 하는 일이고, 협업을 하는 쪽도 제 작품이 맘에 들어 제안하는 거니까 직장인처럼 답답한 상황을 많이 겪진 않죠.”

(하편에서 계속)

[나의 옛날 이야기] ‘요즘 (젊은) 것들’은  연재 글마다 청년들이 직접 고른 옛 사진들을 싣고자 합니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 시절을 들춰보는 ‘코너 속의 코너’입니다. 김재석 작가가 고른 첫 번째 사진은 2013년 미국 뉴욕에서 패션브랜드 질 스튜어트와 함께 일했던 광고 현장입니다. 살짝 초점이 흔들리긴 했지만,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청년의 모습은 언제나 멋지지 않나요.  사진제공 김재석 작가



정양환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