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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만에 밝혀진 베토벤 사인은 납중독 아닌 ‘이것’

입력 | 2023-03-23 20:23:00


작곡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진짜’ 머리카락으로 확인된 ‘모셸레스 타래’. 연구팀은 베토벤의 모발로 알려져있던 8개의 타래를 분석한 결과 이 중 5개가 진짜라고 확실시했다. 이후 이 타래들을 게놈(유전체) 분석해 베토벤의 사인을 알아냈다. AP뉴시스 (Ira F. Brilliant Center for Beethoven Studies, San Jose State University via AP)



위대한 음악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의 사인이 죽은 지 약 200년 만에 머리카락 ‘게놈(유전체)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그동안 납중독 등 여러 가설이 제기돼왔지만, B형간염 감염과 유전적 간 질환, 지속적인 음주로 인한 간경화로 숨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고학과의 트리스탄 베그 연구원과 독일 본 대학 병원 등 공동 연구자들은 세계적 학술지 ‘셀’의 자매지인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22일(현지 시간) 이같은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베토벤의 것으로 알려진 8개의 머리카락 타래를 분석해 이 중 5개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이 맞다고 확신했다. 이후 모발을 분석한 결과 베토벤이 사망 최소 몇 달 전에 B형 간염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다. 게다가 간 질환의 유전적 소인까지 발견됐다. 여기에 널리 알려져 있던 베토벤의 지속적인 음주 이력까지 더해 연구팀은 베토벤이 간경화로 숨진 것으로 간주된다고 밝혔다.

베그 연구원은 “각 요인의 관여 정도는 향후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베토벤의 절친은 베토벤이 사망 전 1년간 매일 1리터의 와인을 마셨다고 진술했다. 알코올 의존과 간질환이 베토벤의 가족력이라고 기록한 문서도 있다.

독일 본에 위치한 베토벤 생가의 관계자가 베토벤의 게놈(유전체) 분석에 사용된 실제 베토벤의 머리카락 타래를 보여주고 있다. 본=AP뉴시스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베토벤은 생전에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주치의에게 사후 자신의 질병을 밝혀내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여러 전문가들이 부검은 물론이고 편지, 일기, 진찰기록 등 베토벤과 관련된 각종 문헌 자료를 분석해 사인 규명을 시도해왔다. 앞서 머리카락 타래의 독성학적 분석을 통해 ‘납중독’ 사망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납중독설의 근거가 된 머리카락 타래는 베토벤이 아닌 유대인 여성의 것이었음이 확인됐다.

베토벤의 청각장애 원인도 규명의 주요 대상이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공동 연구자인 본 대학 병원 인간 유전학연구소의 악셀 슈미트 박사는 “게놈 해석에 필수적인 참조 데이터가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만큼 추후 청력 손실의 단서가 새롭게 발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반 베토벤이라는 성을 공유하고 후손이라고 주장해왔던 벨기에의 한 가족은 게놈 분석 결과 베토벤과 유전적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이들 가족 5명이 베토벤의 직계 부계 조상의 혼외자식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내렸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연구팀으로부터 이 사실을 들은 가족들이 정체성의 일부를 잃게 돼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베그 연구원은 “베토벤의 게놈을 연구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제공하고 그의 진짜 머리카락을 추가함으로써 언젠간 그의 건강과 계보에 대한 남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