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내년 봄쯤 서울에 오게 되는 선배의 중학생 아들이 ‘야구 못 한다면 같이 안 간다’고 한대요. 프로를 지향하는 고(高)레벨이 아니면서도 어느 정도는 열심히 하는 팀(일본의 일반적인 학교 야구부 레벨)을 찾고 있다는데… 일본인 학생 대상으로 한국 주재 일본인 아저씨들이 가르쳐주는 야구 교실은 있는데 그런 레벨은 좀 부족한 모양이에요. 이 친구가 뛸 만한 팀이 있을까요?”
대학 시절 캐치볼을 같이 하면서 친해진 일본인 형에게 2017년 11월 어느 날 이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 형은 서울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던 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팀은 서울대 야구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서울대 야구부는 ‘맨날 지고 또 진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일반 학생’이 뛸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팀이기도 하다.
고맙게도 서울대 야구부에서도 “기꺼이 받아주겠다”고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끝내 이 중학생이 서울대 야구부원이 되는 일은 없었다. 단신 부임을 선택한 아버지는 “(아들이) 역시 익숙한 환경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됐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야구뿐만이 아니다. 일본 여자중학교 농구부는 2020년 기준으로 5649개였고 7만5423명이 선수로 등록한 상태였다. 저변은 실력으로 이어진다. 2021년 도쿄 올림픽 참가팀 가운데 평균 키(175.6㎝)가 가장 작았던 일본이 은메달을 차지한 게 우연이 아닌 이유다. 같은 대회서 3전 전패로 탈락한 한국은 지난해 기준 여중부 농구팀 23개에 선수도 184명이 전부였다.
어느 종목을 찾아봐도 일본 학교에는 운동부가 넘쳐난다. 운동부가 넘쳐나면 ‘선수 학생’과 ‘일반 학생’을 구분하는 게 무의미해진다. 일본은 이런 시스템을 통해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 같은 천재를 길러낼 뿐 아니라 일반 학생도 학교생활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학교란 ‘선수 학생’에게는 프로(실업)팀에 가기 전, ‘일반 학생’에게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 스쳐 지나는 ‘통로’ 같은 곳일 뿐이다.
이렇게 스포츠적인 관점에서 백날 이야기해 봐야 바뀌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그래서 뇌 과학자 존 메디나 박사를 인용하고 싶다. 그는 자기 책 ‘브레인 룰스(Brain Rules)’에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라는 단백질이 있는데 이것이 뇌 영양제”라며 “이 단백질은 몸을 움직일 때 많이 나온다. 몸을 움직여야 머리가 좋아진다”고 썼다. 자녀를 좋은 학교 졸업생으로 만들고 싶으시다면 제발 ‘프로를 지향하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는 열심히 하는 팀’을 많이 만들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여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