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소매 휘날리자 향기는 끝없이 피어오르고, 붉은 연꽃 하늘하늘 가을 안개 속에 피어난 듯.
산 위의 가벼운 구름 잠시 바람에 흔들리듯, 여린 버들 연못가에서 살짝 물결을 스치듯.
(羅袖動香香不已, 紅蕖裊裊秋煙裏. 輕雲嶺上乍搖風, 嫩柳池邊初拂水.)
당시를 총망라한 ‘전당시’에 수록된 양옥환의 유일한 작품. 옥환은 황비 바로 아래 품계인 귀비(貴妃) 양씨의 본명이다. 무희의 아름다운 자태와 동작을 산뜻한 비유로 품평한 시인의 상상력이 무희 못지않게 가뜬하다. 춤사위에 따라 비단 소매에서 퍼져나오는 은은한 향기 속에 펼쳐지는 고운 자태. 당 현종과 양귀비 앞에서 춤 솜씨를 뽐내는 무희 장운용(張雲容)의 동작이 마냥 경쾌하고 유연하다. 어렴풋한 안개 속에 하늘거리는 붉은 연꽃 송이 같고, 산꼭대기 엷은 구름이 잠시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같다. 뿐이랴. 이른 봄 갓 줄기를 내민 여린 버들이 처음으로 연못물을 살짝 스치는 것도 같다. 자기 자신도 가무에 빼어났던 양귀비의 눈에 이 어린 무희의 춤사위는 세련되고 성숙하기보다는 청순하고 발랄한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을 듯. 그런 이미지를 시현(示現)하려 시는 하늘대는 연꽃, 엷은 구름, 여린 버들을 동원한 듯하다.
양귀비가 현종과 함께 향락을 누린 곳은 장안성 외곽 여산(驪山)에 자리한 행궁 화청궁(華淸宮). 30여 년 국가 경영에 치력하여 번영을 구가했던 현종은 말년이 되자 국사보다는 도락(道樂)에 탐닉했다. 온천욕, 불로장생술, 그리고 가무였다. 황제와 귀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에도 이런 모습이 담겨 있다. ‘높다라니 여산 구름 속에 자리한 화청궁/여기저기 신선의 음악 소리 바람결에 들려온다. 구성진 노래, 느릿한 춤사위가 관현악에 어우러지니/황제는 온종일 구경하고도 못내 아쉽기만.’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