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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21세기 新무기…“반란군의 역사 속에서 대응법 찾아야”

입력 | 2023-03-24 10:48:00


스페인어로 진지가 없는 작은 전쟁을 뜻하는 ‘게릴라’는 인류사만큼 오래된 전술이다. 기원전 1만20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리카 수단의 ‘제벨 사하바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 61구 가운데 24구에서 돌화살촉에 공격당한 상흔이 나왔다. 이들은 기습에 당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성경을 통해 널리 알려진 ‘다윗의 전투’ 역시 게릴라 공격이었다. 다윗은 유대 광야에서 야인들을 이끌며 이스라엘 남부에 살던 아말렉인들의 정착지를 기습해 이스라엘 왕위에 올랐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게릴라는 수적으로 열세인 이들이 취하는 ‘약자의 전술’이었다.



미국 외교협회 국가안보연구 선임연구원이자 군사사학자인 저자가 출간한 ‘보이지 않는 군대’(플래닛미디어)는 여전히 건재한 비정규전쟁의 역사를 총망라했다. 1930년대 공중전, 1950년대 핵전쟁, 1990년대 네트워크 중심 전쟁을 거치며 전쟁의 양상이 새로운 전술로 대체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1990년대 총 전사자의 90% 이상은 내전에서 발생했는데, 내전은 주로 게릴라전으로 벌어진다. 국가 간 전통적 군사 분쟁은 줄어든 반면 게릴라와 테러 조직 수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1999년 인도 최북단 카슈미르에선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을 받은 무장 게릴라 세력이 힌두교도가 대다수인 카길 지역을 침공했다. 소말리아와 르완다에서는 권력을 쟁탈하려는 씨족과 정당의 비정규군이 지금도 끝없이 내전을 벌인다. 저자는 정규군에 맞선 게릴라 부대와 반란군, 테러리스트 등 비정규군을 통틀어 ‘보이지 않는 군대’라고 칭한다.

미국 독립전쟁은 근현대 비정규전의 양상을 바꾼 변곡점이었다. 이전까지의 비정규군이 정치적 조직력 없이 ‘치고 빠지기’ 전술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영국 정규군에 맞서 반란군을 이끈 조지 워싱턴(1732~1799) 등 미국 독립운동가들은 무력과 함께 여론을 이용해 영국의 전쟁 의지를 꺾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을 담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해 선전전을 벌였다. 반면 지속된 전쟁으로 사상자가 늘어나는 영국 정부는 내부적으로 국민을 설득할 동력을 잃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무장 게릴라 조직을 가리키는 ‘무자헤딘’은 원래 ‘성전을 행하는 이슬람 전사’를 뜻하는 말이다. 이들은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산과 계곡 등에 숨어 무장 투쟁을 벌인 끝에 1989년 소련군을 쫓아냈다. 이때 무자헤딘을 이끈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아프가니스탄의 나폴레옹’으로 불렸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여론은 21세기 반란군들의 무기다. 이라크 곳곳의 수니파 지하디스트 무장 세력은 미군을 공격한 뒤 민가로 숨어들었다. 미군이 민가를 공격하도록 덫을 놓는 전략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규군을 대상으로 테러를 벌여온 레바논 무장세력 ‘헤즈볼라’는 국내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사회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저자는 21세기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전쟁의 정당성을 안팎으로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 전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21세기 반란군들이 역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인류사에 등장한 비정규군의 성패가 빼곡히 담겼다. 저자는 “현대 게릴라와 테러리스트의 전쟁 방식을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