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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바람의 예술품’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세계 최대의 전쟁기념물[전승훈의 아트로드]

입력 | 2023-03-24 18:28:00

호주 멜버른 여행(2) 그레이트 오션 로드






호주 멜버른 남쪽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총 241km에 이르는 해안도로다. 도로 곳곳에 차를 멈추고 해변으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나 전망대가 있다. 커다란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해변과 절벽의 뷰를 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안 관광도로 중 하나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12사도 바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호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그레이트 오션로드에서 가장 으뜸인 절경은 ‘12사도(Twelve Apostles)’다. 구불구불한 해안 절벽을 따라 거대한 석회암 바위들이 바닷 물 위로 우뚝 솟아 있는 곳이다. ‘12사도’라는 이름은 서구 기독교 문명에서는 매우 성스러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12사도 중 한 명인 성(聖) 야고보의 무덤을 찾아가는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순례길은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도보 순례길이 됐다. 12사도 바위가 잇달아 서 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도 해안선을 따라 100km 구간의 도보 트레일 코스가 있다. 바다와 산을 넘나드는 트레일 코스에는 커다란 배낭에 텐트까지 짊어지고 걷는 젊은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12사도 바위. 빅토리아주 관광청 제공






  ●바닷 속으로 사라지는 12사도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에 즐겨 뽑히는 곳이다. 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고 했을까? 그 이유는 연약한 석회암으로 이뤄진 바위가 해안의 파도의 침식과 바람, 태풍 등의 영향으로 하나 둘씩 무너져 바닷 속으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헬기에서 바라본 12사도 바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것은 애초에 12사도 바위가 ‘파도와 바람의 예술품’으로 태어난 것과도 관계가 깊다. 원래 구불구불한 해안선에 끊임없이 몰려오는 거센 파도가 약한 부분을 무너지게 하고, 바다 위에 남은 절벽은 섬이 되는 것이다. 이 섬마저도 파도에 의해 밑부분이 파이고, 균열이 간 바위 틈새로 소금기 머금은 빗물이 들어가 쪼개지면서 결국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이렇게 12사도 바위는 현재 8개만 남은 상태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포트 캠벨 국립공원에 있는 런던브릿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실제로 그레이트 오션 로드 포트 캠벨 국립공원에 있는 ‘런던 브릿지’ 바위에 가보니 무시무시한 파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곶이었는데, 아랫부분에 파도의 침식으로 두개의 아치가 생겼다.

1990년 무너지기 전 런던 브릿지의 아치 모습.    



그런데 1990년 1월 오후 7시45분 쯤 2명의 관광객이 있는 상태에서 굉음과 함께 한쪽 아치가 갑자기 무너져내렸다. 육지와 연결된 윗부분의 무거운 돌 무게를 얇아진 아치가 지탱을 하지 못한 것. 졸지에 섬이 된 곳에 고립돼 있던 관광객 2명은 3시간 뒤에 경찰 헬기에 의해 구조됐다고 한다.

헬기에서 바라본 런던 브릿지. 육지와 연결된 곶의 일부분이 무너져 섬이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 곳에 있는 안내판에는 ‘파도의 침식에 의해 언젠가는 두 번째 아치도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두개의 새로운 사도 바위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바위도 침식돼 결국 바닷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씌여 있었다.

날카로운 면도날 모양의 줄무늬가 생긴 레이저백 바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포트 캠벨 국립공원에 있는 ‘레이저백(Razorback)’ 바위는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바위들이 이어진다. 14초에 한 번씩 치는 파도가 절벽 아랫부분에 기다란 홈을 만들어내고, 바위가 침식으로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표면이 형성되는 것이다.

레이저백 바위.   빅토리아주 관광청 제공



‘로크 아드 협곡(Loch Ard Gorge)’은 1878년 5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좌초한 선박의 이름을 따 명명한 협곡이다. 해변에 서면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양쪽 절벽 사이로 거센 파도와 물결이 들어오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로크 아드 협곡.    




산책로를 따라 뷰 포인트로 가다보면 로크 아드 호 침몰에서 살아 남은 두 명의 생존자 ‘톰과 에바’의 이야기가 적힌 안내판이 있다. 계단을 타고 해변가로 내려가면, 기이한 형태의 석순과 종유석이 자란 침식 동굴도 구경할 수 있다.


로크 아드 협곡의 종유석.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구경하는 특별한 방법은 헬리콥터를 타는 것이다. 12사도 바위 방문자센터에서 출발하는 헬리콥터(12 Apostles helicopters)를 타고 약 16분 동안 45km를 날아서 12사도 바위와 로크 아드 협곡, 런던브릿지, 코끼리바위 등을 보고 돌아올 수 있다. (비용은 1인당 165호주달러·약 14만4000원)



헬리콥터 유리창 때문에 생각보다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늘 위에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스펙터클한 기암괴석과 파도, 에머랄드 빛 바다를 눈으로, 가슴으로 맘껏 담아올 수 있는 기회였다.

헬기에서 바라본 그레이트 오션 로드.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세계 최대의 전쟁기념물




그레이트 오션로드 건설은 1차 세계대전(1914~1918) 참전 후 귀향한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사업으로 시작됐다. 호주는 1차 세계대전에 총 33만 명의 군인이 유럽, 터키, 중동에서 전투에 참가했다. 총 6만 명이 전사하고, 16만 명이 부상당했다. 참전군인 중 희생자 비율은 64%가 넘었는데, 참전국 중 희생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



영국의 요청으로 1차 세계대전 격전지였던 터키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했던 호주와 뉴질랜드군이 수많은 사상자를 냈기 때문이다. 당시 젊은 군인들의 손실은 인구 500만 명에 불과했던 호주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돌아온 군인들을 위한 일자리 마련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그레이트 오션 로드 건설 사업이 제안됐던 것이다.

1919년 9월19일 시작된 공사에는 총 3000여 명의 1차 대전 참전군인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일했다. 참전군인들은 요리사와 피아노가 갖춰진 캠프에서 머물면서 도로 건설 노동자로 일했다고 한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건설에 참여한 1차대전 참전군인 기념물.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936년 이 도로가 정부에 인수되기 전까지 통행료를 받던 톨게이트가 있던 자리인 ‘이스턴 뷰(Eastern View)’에는 1차대전 참전 군인들을 위한 기념비와 동상이 서 있다. 호주 멜버른의 현지 여행가이드인 대니얼 서 씨는 “이 기념비 뿐 아니라 ‘그레이트 오션 로드’ 전 구간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전쟁기념물인 셈”이라고 말했다.


멜버른 도심에 있는 전쟁기념관.



멜버른 도심 한가운데 있는 공원에도 전쟁 기념관(Shrine of Remembrance)이 세워져 있어 관광객들을 맞는다. 입구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아버지와 아들이 군복을 입고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동상을 만난다. 이 부자(父子)는 1차 세계대전(1914~18)에서 전사한 아버지와 2차 세계대전(1939~45)에서 전사한 아들의 모습이다.

1차 대전 참전 아버지와 2차 대전 참전 아들의 동상. 



전시장에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호주군의 깃발과 사진 등을 볼 수 있는 코너도 있다. 6.25전쟁 당시 호주군은 총 1만8000여 명이 참전해 339명이 전사하고 1200여 명이 부상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영묘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웅장한 전쟁기념관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중앙에 있는 성소다. 1차 대전 종전일인 매년 11월11일 오전 11시에는 천장의 틈으로 한줄기 자연 햇빛이 들어와 대리석으로 만든 ‘기억의 돌’ 위를 비춘다. 성소의 가운데에 놓여 있는 기억의 돌에는 ‘LOVE(사랑)’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멜버른 전쟁기념관 옥상 발코니에서 바라본 도심 전경.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쟁기념관 꼭대기에 있는 발코니에서는 정원에 심어진 250그루의 나무를 비롯해 멜버른 도심의 고층빌딩과 야라강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치지는 전망을 볼 수 있다. 기념관 주변에는 13헥타르에 이르는 정원에 ‘무명용사를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비롯한 수많은 조각품, 기념비 사이로 산책을 할 수 있다.

멜버른 전쟁기념관에 있는 양귀비 꽃 모양의 지붕 조형물.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글-사진 멜버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