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탄생시킨 100만 년의 우기… 장엄한 지구 역사 흥미롭게 풀어 ◇지구의 짧은 역사/앤드루 H 놀 지음·이한음 옮김/304쪽·1만8000원·다산사이언스
길바닥에 널려 있는 돌멩이처럼 무의미해 보이는 게 있을까? 그러나 과학은 이런 물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더 열심히 살펴보기도 한다. 지질학자들은 도대체 세상의 그 많은 땅과 돌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것이 왜 지금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그 연구의 결과는 종종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서울의 우람한 바위산 봉우리들은 공룡 시대에 쏟아져 나온 용암과 관련이 있으며, 강원도 석탄 지대의 지반은 한반도가 머나먼 열대지방에 있었던 까마득한 고생대 시절과 연결돼 있다. 서해 소청도에는 수십억 년 전, 우리에게 친숙한 대부분의 생명체가 생겨나지 않았던 까마득한 옛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돌이 있고, 경남 합천에는 소행성 같은 것이 우주에서 떨어져 재난을 일으킨 흔적을 품은 땅이 있다.
앤드루 놀 하버드대 자연사 교수의 ‘지구의 짧은 역사’는 지구 전체를 무대로 바로 이런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정리해서 들려준다. 지구가 맨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지부터 시작해서, 바다는 어떻게 생겼고, 산은 어떻게 생겼고, 생명체가 사는 공간은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었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서술해 준다. 내용은 너무 어렵지도 않고 너무 뻔하지도 않아서, 세상이 생겨나는 거창한 이야기의 묵직함에 감탄하며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났을까?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 너무도 당연하게 포함돼 있는 산소 기체가 원래 지구에는 거의 없었으며 바다의 어떤 생물이 긴 세월 활동하며 나중에 만들어 주었다는데, 그 마법사 같은 생명체는 무엇일까? 어떤 나라의 신화에서도 보기 힘들 만큼 화려한 이야기들이 실제로 과거의 지구에서 벌어진 사실이고, 그런 일들이 바로 과학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사소한 돌멩이 하나와 세상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연결 짓는 과학의 감동에 흠뻑 빠지게 된다.
과학기술이라고 하면 복잡한 첨단기기나 이해하기 어려운 실험 장면이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지구의 짧은 역사’는 세상의 모든 사소한 것들이 언제나 심오한 과학과 연결될 수 있고, 그래서 더 재미있어진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더 구체적이고 세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의 전작 ‘생명 최초의 30억 년’도 뒤이어 볼 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