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는 학폭 트라우마에 국민적 공분 가해학생 조치 강화 속 엄벌주의 대두 피해학생 보호 최우선 정책 보완해야
한유경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교육학과 교수
요즘 학교폭력(학폭) 이슈들이 불거지면서 학폭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한 고위공직자 자녀의 학폭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학폭 피해자의 복수를 다룬 한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해당 작품의 PD가 학폭 가해자였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학폭을 겪었던 한 유명 유튜버의 피해 경험담이 공개되기도 했다.
학폭 이슈는 적절한 조치와 반성 없는 가해자의 행동으로 피해자가 성인이 된 뒤에도 트라우마를 겪는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가해 행위의 법적인 공소시효는 있을지 몰라도 ‘학폭 피해자의 상처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점에서 전 국민적 분노를 낳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학폭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접근이 시작된 것은 1995년이다. 이후 2004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2012년부터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가해 학생 조치 사항을 기재하도록 했다. 다만 2013년 이후 일부 조치는 심의를 거쳐 졸업할 때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가해 학생 조치를 완화해 온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심각한 학폭 사안이 끊이지 않자 교육부도 지난달 8호 처분(전학) 조치의 경우 졸업 시에도 기록 삭제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일부 규정을 강화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학생, 학부모, 교원들은 정부의 학폭 예방 및 대응 정책을 어떻게 평가할까.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에서 2013년부터 2021년까지(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제외) 매년 실시한 정책평가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학생들은 학부모나 교사들에 비해 학폭 정책의 효과와 중요도를 낮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학폭 정책들이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학생부 기재’와 같은 가해 학생 조치 강화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정책에 비해 학생들이 효과적이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교사들의 경우도 시행 초기인 2013년에는 ‘학생부 기재’ 정책에 대한 효과성 및 중요도 인식이 다소 낮았으나 해가 지날수록 이를 높게 인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무관용주의’ 혹은 ‘엄벌주의’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무관용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미국에서 총기 및 마약 사용 등의 청소년 비행에 대응하기 위해 정학, 퇴학과 같은 강력한 처분을 적용했던 정책에서 유래한다. 이와 다르게 한국에서는 2011년 이후 도입된 가해 학생 조치 강화의 차원에서 인식된다는 데 온도 차가 있다.
학교폭력을 둘러싼 논란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시점에서, 학폭 정책의 방향을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여러 방안 가운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피해 학생의 보호와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강화이다. 첫째, 무엇보다 피해 학생 보호 조치가 최우선 과제이다. 특히 피해 학생과 그 보호자의 회복 지원에 힘써야 하며 신변 보호 및 2차 피해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피해 학생에 대한 사후 지원을 위해 맞춤형 전문 상담을 비롯해 외부기관과의 연계 강화도 필요하다. 둘째, 사안의 경중, 학생의 발달단계와 같은 개별 사안의 특성을 고려하여 엄벌주의와 교육적 조치의 병행이 필요하며 엄벌주의를 적용할 학폭의 범위와 기준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즉시 분리 기간의 연장, 학교장 긴급 조치의 강화, 가해 학생의 생활기록부 보존 기간 연장 및 대입 전형 반영에 대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 볼 수 있다.
한유경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