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퇴역 군용기도 ‘천조국 클래스’, 도입 시 중·러 최신 기종 압도
미 공군 F-22A ‘랩터’ 전투기. 뉴시스
미 공군 살림은 대부분 ‘유지비’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전체 정부 지출 증가엔 반대하면서도 국방비만큼은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내년 실제 국방예산은 국방부가 작성한 예산안보다 늘어날 수도 있다. 미 국방 예산안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공군력 증강 대목이다. 예산안 가운데 공군부(Department of Air Force)가 제출한 몫은 2151억 달러(약 281조 원)다. 이 중 공군과 우주군 예산이 각각 1851억 달러(약 242조 원), 300억 달러(약 39조 원)다. 공군 예산만 242조 원으로 한국의 올해 전체 국방예산 57조 원의 4배를 훌쩍 넘는다. 그야말로 천문학적 규모인 미 공군 예산을 항목별로 찬찬히 살펴보자. 1851억 달러 가운데 1206억 달러(약 158조 원)는 기존 전력을 유지하는 일종의 운영비다. 이 중 785억 달러(약 103조 원)는 항공기 운용 등 준비태세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각종 비용, 421억 달러(약 55조 원)는 군인·공무원 인건비다. 이 같은 운영비를 제하고 남은 예산 중 362억 달러(약 47조 원)가 기술개발 및 신무기 평가(RDT&E) 예산이고, 신무기 구입비는 283억 달러(약 37조 원)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미 공군에는 실로 다양한 유형의 항공기와 무기가 있다. 일견 많아 보이는 예산 37조 원도 그때그때 신무기를 구매하려면 빠듯한 규모다. 미 공군의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전투기 구매 수량이 고작 72대뿐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3월 기준 미 공군 전투기가 2183대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전투기 전력의 3.2%를 교체할 수 있는 정도다. 미 공군이 새로 구매할 전투기는 F-15EX 24대, F-35A 48대다. 반면 조만간 퇴역할 예정인 전투기 수량은 그 2배에 가까운 131대다.
미국이 퇴역시킬 전투기 면면을 보면 “역시 미국이구나”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우선 ‘현존 최강 전투기’로 불리는 F-22A 랩터가 32대나 퇴역할 예정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생산된 이 모델의 기령(機齡)은 30년이 채 안 됐다. 이른바 ‘글로벌 스트라이크’ 패키지 개량 덕에 공중전은 물론 JDAM(합동직격탄)을 이용한 지상 정밀 타격도 가능할 만큼 성능이 우수하다. 다만 현용 블록 30·35·40버전보다 구형이라는 이유로 퇴역이 결정된 것이다. 이른바 ‘F-22의 전설’을 세운 기종이 바로 F-22A 랩터다. 2006년 6월 ‘노던 에지’ 훈련에서 F-22는 F-15 등 4세대 전투기와 모의 공중전을 벌여 144 대 0 전적으로 승리했다. 이때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랩터는 현존하는 4~4.5세대 전투기를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가공할 성능을 갖췄다. 그럼에도 “노후화로 비용 부담이 크고 신예기를 도입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미군의 결정에 다른 나라들은 놀랄 수밖에 없다.
1970년대 기종도 성능 개량으로 ‘현역’ 수준
미군이 퇴역시킬 예정인 또 다른 전투기 모델은 F-15C/D다. 한국 공군의 현용 주력 전투기 F-15K보다 우월한 성능을 가진 모델로, 57대가 퇴역 대상이다. 미 공군은 현재 보유 중인 F-15C/D 270여 대를 향후 4년 안에 전량 퇴역시킬 계획이다. 이 기종은 1978년부터 생산된 모델이기에 일견 낡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대대적인 성능 개량과 기골 보강 프로그램을 거쳐 타국의 현용 주력 전투기에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고성능 전투기다. 특별한 점은 F-15C/D가 이른바 ‘골든 이글(Golden Eagle)’로 불리는 모델이라는 것이다. 장거리 및 근접 공중전 등 어떤 형태의 대결에서도 중국 최신 4.5세대 전투기를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을 갖췄다.골든 이글의 대표적 강점은 ‘눈’이 밝다는 것이다. APG-63(V)3 AESA 레이더로 중국 J(젠)-11, J-16 같은 대형 전투기를 최대 296㎞ 거리에서 탐지할 수 있다. 복잡한 주파수 변조 방식으로 전파를 방사하기에 중국 전투기의 레이더 경보 수신기(RWR)로는 자기가 조준된 것조차 인식할 수 없다. 일본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운용된 일부 기체엔 ‘레기온 포드(Legion Pod)’로 명명된 장거리 적외선 탐지·조준 장치가 탑재됐다. 이 장비를 사용하면 중국 J-20 같은 스텔스 전투기도 원거리에서 탐지해 공격할 수 있다. 실제로 미 공군은 레기온 포드로 장거리에서 표적기를 탐지·추적한 뒤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해 격추시키기도 했다.
골든 이글은 헬멧 장착 조준 시스템(JHMCS)과 이에 연동되는 AIM-9X 미사일 운용 능력도 갖췄다. 전통적 형태인 근접 공중전은 적기의 꼬리를 물기 위해 전투기를 급기동시키는 등 운용 방식이 복잡하다. 반면 JHMCS가 있으면 조종사가 헬멧을 쓴 채 적기를 바라만 봐도 어느 방향에서든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중국, 러시아의 ‘수호이’ 전투기가 에어쇼 같은 화려한 공중기동으로 근접 공중전을 시도해도 별 어려움 없이 제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정도 성능을 갖춘 전투기가 미 공군에선 2026년까지 일선에서 물러나는 퇴물 아닌 퇴물 신세다.
탐색구조헬기, 조기경보통제기 등 퇴역 기종 다양
미 공군 HH-60G 헬리콥터. GettyImages
이 밖에도 퇴역하는 미군 항공기 중엔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고성능 모델이 수두룩하다. 한국에선 1선급 현역인 HH-60G 탐색구조헬기 37대, 지금도 각국에서 주문이 쏟아지는 MQ-9 무인공격기 48대, RQ-4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1대, E-3 조기경보통제기 2대와 E-8C ‘조인트 스타즈’ 3대, EC-130H 전자전기 2대, EC-130J 심리전기 4대 등이다.
이 중 HH-60G는 적진에 고립된 조종사를 구출하는 탐색구조헬기로 유명하다. 걸프전에서 데뷔한 이 기체들은 평균 기령이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정비만 잘하면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헬리콥터의 구조적 특성상 아직도 쌩쌩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후속 모델 HH-60W가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퇴역이 결정됐다. HH-60G는 지속적인 성능 개량, 기골 보강 덕에 어지간한 특수전 헬기보다 뛰어난 저공 침투·장거리 비행 능력을 갖췄다. 미국 이외 국가 입장에선 굳이 퇴역시킬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미 공군 E-8C 정찰기. 미 공군 제공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제309항공우주 정비·재생 전대에 보관된 각종 군용기. GettyImages
“北·中 군사 대응 능력 높이겠다”고 미국에 어필해야
만성적인 전투기 부족에 시달리는 한국 공군엔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 미군이 퇴역시키는 전투기·정찰기를 헐값에 구매해 부족한 전력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들 항공기는 여전히 1선급으로 쓸 수 있는 우수한 성능을 갖췄다. 대량생산돼 전 세계적으로 부품 수급도 원활한 편이다.실제로 미국은 육해공군을 가리지 않고 막대한 퇴역 장비들을 치장물자로 보관하고 있다. 이 중 일부를 종종 해외에 임대·매각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공군의 현용 주력 전투기 F-16C 24대가 바로 그런 사례다. 미 공군에서 퇴역해 보관 중이던 기체를 인도네시아 측이 구매한 것이다. 대대적 성능 개량과 예비 부품 패키지를 포함해 대당 3100만 달러(약 405억 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신품 F-16 전투기 패키지 가격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번에 미 공군이 퇴역시키는 항공기는 기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할뿐더러, 한국 공군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모델이 적잖다. 물론 이를 구매하려면 미 정부를 설득하는 게 급선무다. 한국이 미국의 중고 항공기를 사들여 대북·대중 군사 대응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어필하면 상당한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한국군 지휘부의 발상 전환과 정부의 예산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가성비’ 높게 공군력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82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