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멜버른 여행(3)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제2의 도시 멜버른은 ‘남반구의 런던’이라고 불린다. 멜버른 인근에서 1850년대 금광이 발견돼 전세계에서 이민자들이 찾아오는 골드러시로 일약 금융의 중심지로 떠오른 도시였기 때문이다. 시내에는 영국 빅토리아풍의 건물이 곳곳에 남아 있고, 고풍스러운 아케이드에는 세계 각국의 미식(美食)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맛집이 가득하다. 문화도시 멜버른의 미술관과 광장, 시장에서는 이벤트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 최첨단 도시에서 즐기는 슬로우 여행
멜버른 도시는 시내를 관통하는 야라(Yarra)강을 주변으로 마천루의 유리창이 햇빛을 받아 번쩍인다. 그 중 남반구 최대인 89층 높이의 ‘유레카 타워’에 올라가면 멜버른 도심과 바다까지 360도 전망을 볼 수 있다. 노천카페가 즐비한 야라강가에는 이른 새벽부터 젊은이들이 노를 젓는 날렵한 조정 경기정들이 떠다니는데, 밤이 되면 크라운 카지노 앞에서 불꽃쇼가 펼쳐지는 등 아름다운 야경으로도 유명하다.그래피티로 유명한 호시어 레인(Hosier Lane) 골목길은 ‘미사 거리’라는 애칭이 붙어 있다. 소지섭, 임수정이 주연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촬영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류 드라마의 인기를 타고 외국인들도 이 곳에서 인증샷을 남기느라 골목길은 늘 북적인다.
로얄 아케이드와 함께 멜번의 역사적인 건축물로 등록돼 있는 블록 아케이드 내부에는 3대째 운영되는 애프터눈 티 카페 ‘홉툰티룸(Hopetoun Tea Room)’이 있다. 딸기 케익, 바닐라 슬라이스, 초콜릿 타르트 등 디저트와 함께 커피와 차를 마시기 위한 손님들이 긴 줄을 서는 곳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리트와 빅토리아 스트리트의 모퉁이에 있는 퀸 빅토리아 마켓은 가장 활기찬 멜버른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매일 새벽에 문을 여는 이 곳은 과일과 식료품 뿐 아니라 의류와 잡화까지 다 판다. 심지어 캥거루 고기, 악어 고기, 타조알도 구할 수 있다.
이탈리아, 그리스, 인도네시아, 태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상인으로 일하고 있는 퀸 빅토리아 마켓은 그야말로 다문화의 용광로다. 여름철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야시장(Night Market)에서는 지구촌 먹거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야시장에서는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날 수 있는 ‘회오리 감자’ 코너에도 긴 줄이 섰다.
이러한 멜버른의 도심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 바로 열기구를 타고 도심의 하늘을 나는 것이다. 터키의 카파도키아, 이집트 룩소르처럼 한적한 초원이나 사막 위에서 풍선을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도심의 최첨단 마천루 빌딩 위를 날으면서 일출을 감상하는 체험이다. 드론 비행도 통제하는 서울 하늘에서는 상상도 못할.
새벽 5시50분. 멜버른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 앞으로 ‘글로벌 벌루닝(Global Ballooning)’이란 이름이 새겨진 승합차가 왔다. 트레일러에는 대형풍선이 실려 있었다. 조종사가 건넨 브로슈어에는 “전세계에서 유일한 대도시 열기구 체험”이라고 씌여 있었다.
차량은 멜버른 서쪽 야라강 하구 뉴포트 파크에 멈춰섰다. 함께 떠오를 대형풍선 5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풍선의 입구를 붙잡은 뒤 바람을 밀어넣고, 가스 불꽃을 만들어내니 풍선이 똑바로 서기 시작한다.
차량에 연결된 밧줄을 풀자 승객들이 탄 바구니는 그야말로 사뿐하게 떠오른다. 점차 시야에 들어오는 항구의 컨테이너, 정박돼 있는 크루즈선, 그리고 저멀리 도심의 마천루와 바다….
남서풍을 타고 날아가는 열기구는 바다에서 요트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기계적 동력장치가 아니라 순수하게 바람에 온 몸을 맡기는 체험이다. 요트를 타고 갈 때 엔진소리 없이 산들산들 전진하는 것처럼, 풍선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고요하게 바람에 실려갔다.
그러면서도 드론 화면에서나 볼 수 있는 광활한 뷰가 눈 앞에 펼쳐졌다. ‘시네마 모드’로 촬영할 때처럼 천천히 시야가 확대돼가는 감동 말이다.
저 멀리 멜버른 도심의 빌딩 너머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두꺼운 구름 사이로 내리비치는 붉은 햇살이 마치 ‘지구 종말의 날’을 그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신비롭다. 도심의 빌딩의 유리창에 붉은 아침 노을이 반사돼 반짝거렸다.
열기구는 유레카 타워를 비롯해 70~80층 건물이 즐비한 멜버른 도심을 관통하며 야라강 상공 위를 날아간다. 아침부터 강물 위에서 조정 훈련을 하고 있는 선수들, 다리 위로 분주하게 오가는 차량들, 트램과 열차…. 간 밤에 기자가 묵었던 호텔의 간판까지 하늘 위에서 확인하니 더욱 반가웠다.
열기구를 운전하는 호주의 베테랑 조종사는 주택가 수영장이 다 보일 정도로 낮게 날다가도, 빌딩이 가까워지면 가스불을 켜서 열기구를 상승시켰다. 풍선의 천장을 막고 있는 구멍을 열어 열기를 빼내면 풍선은 내려앉았고, 줄을 당기면 풍선이 회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종사는 단순히 열기구를 올리고 내리고, 제자리 회전을 할 수는 있지만 바람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날의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서 착륙지점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종사는 열기구의 줄에 매단 고프로 카메라를 이용해 바구니에 탑승한 사람들을 위한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고층빌딩 위를 날아가는 대형풍선과 함께 찍힌 탑승객의 모습은 합성사진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약 1시간의 비행을 마친 풍선은 멜버른 시내 동북쪽 외곽의 크리켓 경기장 잔디밭 위로 착륙했다. 조종사는 열기구가 땅에 닿는 앞부분을 살짝 들어올려 소프트랜딩(연착륙)에 성공했다. 반면 다음에 내린 또다른 풍선은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바구니가 몇 미터나 끌려가는 경착륙으로 잔디밭에 심하게 긁힌 자국을 남겨두었다. 하차한 뒤 모든 탑승객들이 힘을 합쳐 풍선에 가득한 바람을 빼고, 접어서 차에 싣는 것을 도왔다.
21세기 인공지능(AI) 기술의 시대에 즐기는 아날로그 체험은 멜버른 외곽 단데농 국립공원의 퍼핑빌리에서도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토마스 기차’와 똑같이 생긴 증기기관차가 우거진 원시림 사이를 구불구불 달려간다.
기관실에는 실제로 화부가 석탄을 삽으로 퍼붓고, 굴뚝에서는 하얀색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퍼핑빌리 계곡에는 100년이 훨씬 넘은 나무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있다. 그 목재 다리 위로 증기기관차가 지나간다. 창틀에 앉은 승객들은 창밖으로 다리를 내놓고 활짝 웃고 있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 호주 와인과 온천
호주는 칠레, 프랑스 등과 함께 세계적인 와인 생산국이다. 청정자연에서 생산된 자연포도로 만든 와인은 깊고 부드럽다. 멜버른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빅토리아주의 야라밸리는 호주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와인산지다.호주 최고의 피노누아와 스파클링 와인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 야라밸리에는 50여 개의 와이너리, 40개 이상의 와인 저장고가 마련돼 있다. 빅토리아주의 모닝턴반도에 있는 몬탈토(Montalto) 와이너리는 포도원과 레스토랑, 카페, 야외조각과 습지대 등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피노누아와 시라즈, 사르도네 와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고, 포도원 투어와 점심식사도 즐길 수 있다.
모닝턴 페닌슐라 온천은 자연의 숲 속에서 천연 미네랄 성분의 노천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대규모 욕탕같은 온천이 아니라 우거진 숲 속에 10명 미만의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노천 온천이 그림처럼 놓여 있다.
수영복 차림에 하얀색 가운만 걸치면 온천을 즐기면서 숲 속을 걷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힐탑 온천. 가장 높은 언덕 끝까지 올라가면 광활한 호주의 초원을 360도로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갖춘 노천탕이 나온다. 멜버른의 초록색 자연이 온 몸으로 들어오는 이 곳은 인생샷 명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