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정적을 깨기 위해, 더 솔직히 말하자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TV를 켠다. 귀가 아직 가지 않았다. TV 속 말소리, 음악소리 다 들린다. TV를 끄고 글을 쓴다. 손가락도 아직 가지 않았다. 혼자 피식거리며 때로는 눈물 찔끔거리며 노트 여백을 채워간다. 잘하고 있어, 연홍아! 셀프 칭찬도 하면서.’(‘나의 감사는 늙지 않아’에서)
1952년생 정연홍 씨는 현역 환경미화원이다. 매일 오전 8시 반까지 대구의 한 아파트 단지로 출근해 오후 3시 반까지 청소 일을 한다. 이곳에서만 10년 넘게 일했고 얼마 전 소속 용역업체로부터 10년 근속상과 상금도 받았다.
일터에서의 정연홍 씨. 이 아파트단지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했다. 대구=서영아 기자sya@donga.com
“내 손길과 발길로 깨끗해지는 아파트는 제 성역 같아요. 20층 넘는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돈도 벌고 운동까지 하니 얼마나 좋아’라며 웃곤 하지요.”
이뿐인가. 오가며 마주하는 동료, 동네 사람들과 건네는 가벼운 인사, 웃는 얼굴은 삶이 그에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첫 책 ‘나의 감사는 늙지 않아’(대경북스)를 냈다. 갑자기 듣게 된 ‘작가’ 호칭이 쑥스럽지만 행복하다. 책 서두에 본인이 표현했듯 ‘71세 나이에 글 쓰고 일을 하니 제법 찬란한 삶을 살고 있는 할머니’다. 책은 소박한 분량과 내용의 에세이집인데, 묘하게 힐링과 격려를 전해준다.
정 씨의 인생 2막 스토리를 듣기 위해 17일 대구의 일터로 찾아갔다. e메일로 책 출간 소식을 알려준 딸 김현아 씨(46)가 인터뷰를 돕기 위해 경기 수원에서 달려왔다.
55세 전업주부의 가출, 홀로서기
정 씨의 인생 무대는 17년 전 그날 밤 전과 후로 나뉜다.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엄마로 살아왔던 삶을 내려놓고 오롯이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했다. 딸 김 씨의 회상이다. “새벽 2시쯤에 엄마가 좀 와달라고 연락을 했어요. 남편과 함께 가봤더니 집을 나가겠다고 하셔서 반대했어요. 이기적인 얘기로 들리겠지만 ‘지금껏 참아왔는데 조금만 더 참아 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설득했지요. 한편으로는 ‘잠시 이러다가 그만두시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아파트단지 앞 카페에서 함께 한 엄마와 딸. 정 씨는 한 때 한 잔에 몇천원하는 커피값에 경악했지만 점차 이곳이 커피가 아니라 단란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사는 곳이라는 딸의 설명을 수긍하게 됐다고 한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결국 정 씨는 집을 나왔다. 처음 한달은 여관방에서, 그뒤 1년은 딸 내외의 18평 신혼집에서 지낸 뒤 월세방을 얻어 독립했다.
―그런데 왜 집을 나가신 건가요. 책 내용만으로는 도무지 모르겠던데요.
“집에서 엄마는 존중받지 못했어요. 옛날 분들 그런 경우 많잖아요. 가족을 위해 헌신만 하셨죠. 엄마는 늘 표정이 굳어 있었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9명 대식구의 살림을 해야 했으니 삶의 부담이 너무 심하셨죠. ”
가족에겐 갑작스러웠지만 정 씨로서는 오래 생각했던 거사였던 듯하다. “딸 시집도 보냈고 나머지 식구들도 모두 제 갈길 찾아갔어요. 남은 건 아들 둘인데 막내가 20대 중반이었으니 다 컸죠. 제가 할 일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어요.”
책 출간을 축하받는 정연홍 작가. 김현아 씨 제공
당초 엄마의 가출을 반대했던 딸은 이후 서서히 달라지는 엄마의 삶을 지켜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가 10년 간 살았던 월세방은 곰팡내가 심했어요. 엄마가 안쓰러웠지만 그게 싫어서 자주 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가끔 보는 엄마 표정은 환했어요. 세상 편하고 자유롭고 좋다고요.
‘어, 엄마가 웃네….’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던 엄마가 자기 의견을 말하네….’ 다른 사람처럼 변한 엄마를 보며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죠. 과거 대가족 속에서 자신을 지워버렸던 엄마였는데, 요즘은 친구 같아요. 한 인간으로서 생생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존재감을 경험하고 있어요.”
나아가 김 씨는 “지금도 우리 엄마 연령대 분들 중에 자신을 지우고 사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며 “그런 분들이 계신다면 좀 용기와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씨는 지금은 막내아들(42) 집에서 살고 있다. 다른 지방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막내 아들은 주말이면 집에 돌아와 엄마와 함께 지낸다.
무한 긍정의 힘
정 씨의 일터는 947가구가 사는 아파트 단지다. 환경미화원 8명이 관리한다.정 씨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은 뒤 남은 30분 남짓 동안 떠는 수다가 세상 제일 즐겁다고 한다. ‘안 되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는’ 이야기꽃이 핀다. 월급 받으면 1인당 1만 원씩 모아놓은 돈으로 피자도 시켜 먹고 찜닭도 시켜 먹는다.
일터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울어도 예쁘고 똥을 싸도 예쁘고 떼를 써도 예쁜 꽃같은 아이들’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도 그저 즐겁고 감사한 일이 넘친다. 책에서 한 대목을 뽑아 오자면 이런 식이다.
‘주민은 택배기사님께 드리고 기사님은 나에게 주시고 나는 택배 총각에게 주고/박카스 한 병이 돌고 돌아 서로에게 행복이 되어 주었다/조그마한 박카스 한 병이 사랑을 싣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신기하다/행복이 뭐 별건가/이렇게 우리는, 박카스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행복 전도사가 된다.’
정씨의 100번 쓰기 노트의 일부. 감사와 행복으로 가득하다. 정연홍 씨 제공
정 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글을 쓴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고 중요한 대목은 베껴 써보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100번 쓰면서 자기 암시와 다짐을 하는 100번 쓰기를 실천 중이다.
봄이 오면 아직도 설렌다. 인생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한다.
“젊음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너희들이 부러워. 그리고 부러운 것을 부럽다고 말할 수 있는 나는 행복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살면서 제대로 느끼고 있으니 이 또한 행복해.”
딸 김 씨의 얘기. “엄마의 장점은 무한 긍정이에요. 엄마랑 차 타고 가다가 누군가가 매너 없이 끼어들어 제가 화를 내면 엄마는 옆에서 ‘거, 똥 마려운가 보다’라고 해요. 풋 하고 웃게 되죠. 그 뒤로는 같은 상황에서 ‘하, 그 사람 똥 많이 마려운갑네’라고 생각하면 화가 안 나요.”(웃음)
“딸아, 엄마는 이 나이에도 다시 시작할 거야”
2019년 정 씨는 10년간 모은 돈으로 수원에 집을 샀다. 정확히는 전세를 끼고 딸과 공동명의로 샀고, 최근 자신의 지분을 딸에게 넘겨줬다. 수중의 돈을 박박 긁어모으다 못해 걸치고 있던 귀고리까지 빼서 팔았다.‘서울에서 한번 살아보는 게 로망’이라는 딸이 부동산 투자에 실패해 우울증을 앓던 시기였다.
“엄마는 이제 가진 게 하나도 없어. 하지만 다시 시작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다시 시작해 봐.”
김 씨가 독서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하자 멤버들이 나이든 엄마가 딸에게 용기를 주고 목표에 다가서도록 돕는 모습이 좋다며 한번 모셔보자고 했다. 이렇게 만든 자리에서 몇 사람이 ‘책을 써서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라’고 했는데, 정 씨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어느 틈엔가 2022년 신년 목표를 ‘책 쓰는 것’으로 잡았다.
“2021년 12월초에 엄마랑 다음해의 목표에 대해 얘기했어요. ‘내년 엄마 목표는 뭐야?’했더니 ‘난 책 쓰기야. 책 쓸 거야’라며 빵 터지며 웃으세요. 엄마가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난 이걸 목표로 정했어. 너는?’ 하시길래 ‘난 이사가기’라고 답했죠. 그런데 2022년도에 두 사람 모두 목표를 이뤘어요. 허황된 목표라 생각했는데, 간절히 바라고 노력한 덕이겠죠.”(딸 김 씨)
책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김 씨는 수소문을 통해 책 쓰기 코칭을 하는 백미정 작가를 정 씨에게 연결해 줬다. 백 작가는 매일 정 씨가 쓴 글을 사진 찍어 보내면 타이핑을 하고 책의 틀을 잡아줬다. 출판사는 마케팅에 불리하다는 백작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작업이 즐거울 것같다’며 흔쾌히 책을 내줬다.
―올해 목표는 뭐로 잡았나요.
“직업 바꾸기. 노후를 위해 작년에 치매 예방 지도 자격증을 땄는데 그걸로는 생활비를 벌 수가 없더군요. 그냥 나중에 양로원 들어가 자원봉사할 때 쓰려고요. 마침 70세였던 환경미화원 일은 정년이 없어져 계속 일하고 있어요.”
―조금 더 연세가 들면 몸이 힘들어질 수 있을 텐데요.
“건강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일은 손을 놔야죠. 그 뒤 일을 생각은 해보지만 제 의지로 딱 부러지게 정할 수는 없잖아요. 다만 연명치료 거부 의사는 등록했어요. 내가 정신이 있을 때 등록해 놔야 애들이 나중에 마음 쓸 일도 없겠다 싶어서요.”
“다시 그러고 싶다”
명색이 100세 시대라지만 우리 모두는 자신으로서는 처음 맞는 나이대가 낯설다. 70여 년 살아본 정 씨는 ‘뒤돌아보면 모든 길이 꽃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정 씨가 스스로 ‘평생 가장 잘한 일’로 꼽는 건 뭘까.“19세 때 아버지 환갑은 놓쳤지만 2년 뒤 어머니 환갑은 제대로 하고 싶어서 공장 다니며 적금을 들었어요. 이웃 어르신들을 불러 잔치 국수를 대접했는데, 잔치를 준비하는 어머니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죠. 시집간 언니는 간간이 눈물을 훔쳐가며 어르신들을 대접했고요.
아버지에게 손목시계를, 어머니에게는 3돈짜리 금반지를 끼워 드렸어요. 금반지는 생전 처음 끼어본다며 보고 또 보고 만져보는 엄마가 어린아이 같았죠. 그게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이에요. 잠시만이라도 부모님을 다시 뵐 수 있다면 더 반짝이는 시계, 더 큰 금반지 해드리고 싶어요. 그러고 싶어요.”
묻히고 잊혀진 수많은 우리네 할머니들의 소박한 기억과 한(恨)을 엿본 느낌이 들었다.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대구=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