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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돌 궁금해 타코와 맥주로 버텨”…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입력 | 2023-03-26 11:41:00


서울 관악구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를 열고 있는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이 자신의 나무 조각을 바라보고 있다. 인터뷰날 그는 짙은 초록색 티셔츠 위에 데님 자켓을 입고 등장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조각가 김윤신(88)이 스물여덟 살이던 1963년. 6남매 중 막내딸인 그는 오빠에게 프랑스로 유학을 가겠다고 말한다. 오빠는 동생에게 “결혼은 안하겠다는 얘기냐”고 했다. 그렇다는 여동생에게 오빠는 두 가지를 말해주었다.

“네가 늙어도 조카들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 호랑이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것. 두 가지만 명심하면 좋겠다.”

그렇게 떠난 동생은 프랑스는 물론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을 누비며 평생을 작가로 살았다. 한국의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그를 조명하는 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22일 미술관에서 그를 만났다.


● 교수직 버리고 남미로 떠나다

〈합이합일 분이분일 (合二合一 分二分一) 1984-84〉 부분, 84, 미상의 나무, 145×38×35cm © 박명래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김윤신은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1960년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뒤 상명대 조소과 교수도 역임했지만 50살이던 그 해 교수직을 버리고 떠났다.

주변에서 만류할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났다는 그는 처음에는 아르헨티나로 떠난 조카를 돌봐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무작정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 “전시를 열게 도와달라”고 말한 뒤 1년 만에 정말로 전시를 열었고, 현지에서 주목을 받으며 작가 생활을 이어갔다.

“1년 뒤 오빠가 알고 난리가 났어요. ‘학교에서도 널 찾는데 이렇게 말없이 떠날 수 있냐’고요. 군인이었던 오빠는, ‘내 밑에 수천 명이 있지만 누구에게도 배반을 당한 적이 없는데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배반했다’며 굉장히 서운해 하셨죠.”

그러나 그는 아르헨티나의 드넓은 지평선과 커다란 나무에 반한 상태였다.

“교수가 아니라 미술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먹고 살 고민은 안했어요. 내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죠.”


● 타코와 맥주로 버틴 멕시코

오닉스를 재료로 한 작품이 보이는 전시 전경. 사진: © 박명래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남미에서 그는 자유롭게 다양한 재료를 탐구했다. 1988~1991년에는 멕시코 테칼리 마을에서 ‘오닉스’를, 2001~2002년은 브라질 솔레다데 마을에서 준보석을 재료로 석조각을 했다. 테칼리 마을은 비도 잘 오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 먹을 것이 부족했다.

“강냉이를 갈아 전처럼 부친 뒤 연한 선인장 이파리와 풋고추를 넣은 타코와 캔맥주로 끼니를 때웠죠.”

그런 남미에서 최근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기톱을 들고 조각을 한다. 나무 조각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린 최근의 연작들을 ‘김윤신 만의 장르’로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도 이야기했다.

김윤신의 ‘기원 쌓기’ 시리즈. 사진: © 박명래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그 옛날 어떻게 결혼을 포기하고 예술가의 길을 택했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전쟁을 많이 겪었다”고 답했다.

원산 출신인 그는 13살이던 1948년, 사라졌던 오빠가 중국에서 독립군으로 싸우다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와 38선을 넘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거리에 시체가 가득했고 살아남아야 된다는 생각 외엔 없었어요. 나라를 위해 죽음도 감수했던 오빠를 보며 나도 신념을 갖고 살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런 김윤신의 작품은 ‘합이합일 분이분일’, 서로 다른 것이 하나이며 같은 것이 또 둘로 나눠지듯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담는다. 지금도 생생한 전쟁의 고통, 지구 반대편 낯선 땅 남미 등 너무나도 다른 것들을 껴안고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예술이라는 듯 말이다. 이번 전시에는 석판화 석조각 목조각 등 작품 70여 점이 소개된다. 5월 7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