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츠그룹 北京 사무실 폐쇄, 직원 5명 구금 글로벌 기업인 100명에게 ‘경고장’ 날린 셈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인 100여 명이 25일 중국에 모였다. 27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발전고위급포럼(CDF)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CDF는 중국 정부가 매년 세계 정·재계 고위 인사들을 초청해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 행사가 올해 특히 주목받은 것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미중 갈등 때문이다. 글로벌 CEO들이 베이징에 모이기 직전인 21일(현지 시간) 미 상무부는 반도체법 보조금 혜택을 받는 기업들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 생산 능력 확장에 제동을 거는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 장치) 규정을 발표했다. 중국은 곧바로 “철두철미한 과학기술 봉쇄와 보호주의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실상 미중 가운데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CEO들 행보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이런 민감한 시점에 이들을 대거 불러 모은 것도 심상찮아 보인다.
앞서 중국 당국은 20일 베이징에 있는 미국 기업실사업체 민츠(Mintz)그룹 사무소를 기습 단속해 중국인 직원 5명을 체포하고 사무소 운영을 중단시켰다. 체포된 직원들은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채 베이징 외곽 모처에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츠그룹은 사기와 부패, 직장 내 위법 행위 같은 기업 내부 문제나 그 배경을 전문으로 조사하는 업체로 베이징을 포함해 전 세계에 18개 사무소를 두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틀어쥔 일당 독재국가다. 여기에 리커창(李克强) 총리같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정치적 경쟁 관계에 있는 인물들은 모두 물러난 상태다. 지난해까지 형식적으로라도 남아 있던 공산당 내부 견제와 균형이 모두 사라지고 시 주석 중심 완벽한 ‘1인 권력집중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시 주석과 그를 수호하는 공산당 뜻에 따라 모든 국가 조직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따라서 미국 기업을 급습해 베이징 사무소를 폐쇄한 이 사건이 벌어진 시점도 우연만은 아닐 수 있다. 아무리 중국이 글로벌 파워라고 해도 굴지의 글로벌 CEO 100여 명을 베이징에 모으는 일은 쉽지 않다. 굳이 이때 미국 기업 사무소를 폐쇄해야 할 만한 다급한 이유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는 CEO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일 수도 있다. 로이터는 미국 기업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 정부가 ‘주목할 만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면서 “중국의 위험에 대해 지금 당장 모든 기업 이 사회에 적색경보를 울려야 한다”고 전했다.
중국은 베이징에 모인 CEO들에게 “최상의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하겠다”며 개방과 유화의 손짓을 보내면서도 동시에 ‘경고’도 잊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 의도대로만 움직인다면 언제라도 민츠그룹 같은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지난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시 주석은 중-러가 힘을 합쳐 미국과 서방 중심 세계 질서를 거부하고 재편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한국 기업이 시험대에 먼저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