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시점 연작소설집 ‘사랑의 꿈’ 낸 손보미 작가 10대 소녀들 내면 이야기 다뤄… ‘자전’ 아니지만 작가 목소리 담겨 “어리다는 이유로 뭔가 빼앗겼던 초등학교 경험에서 소설 출발”
10대 소녀들의 내면을 다룬 연작소설집 ‘사랑의 꿈’을 펴낸 손보미 작가. 그는 “소설 속 ‘나’를 통해 (어른이 된) 독자들이 지금 느끼는 감정의 연원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어른이 되어 느끼는 수치심, 상실감 등 감정의 연원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소설집 ‘사랑의 꿈’(문학동네)으로 돌아온 손보미 작가(43)의 말이다. 개별적 인간의 눈높이에서 삶과 세상에 대해 세밀하게 풀어온 그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10대 소녀 ‘나’의 내면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펼쳐놓는다. 손 작가는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며 “아이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벌어지는 일을 아이들의 관점에서 썼다”고 했다.
각각의 소설 속 ‘나’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화하는 주변 세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헤쳐나간다. ‘밤이 지나면’에서 부모의 이혼으로 외삼촌 집에 맡겨진 ‘나’는 낯선 여자에게 자신을 데리고 “사라져 달라”고 애원한다. 그리고 “나는 그냥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소녀가 주인공인 1인칭 소설을 잇달아 쓴 것은 작가에게는 지난해 8월 출간한 추리소설 ‘사라진 숲의 아이들’만큼이나 새로운 시도였다.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지만 경남 마산의 평범한 10대 소녀였던 작가 내면의 목소리가 소설에 담겼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손 작가가 초등학생 시절 불조심을 주제로 쓴 글로 상을 타자 선생님은 “네가 아니었어도 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글이 특별히 뛰어난 건 아니라는 의미였다. 선생님은 부상으로 받은 소화기도 학교에 기증하라고 요구했다. 작가는 낭패감과 비정함을 느꼈다고 한다. 손 작가는 “어리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쉽게 빼앗기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경험에서 이번 소설이 출발했다”고 했다.
지난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이번 소설집에 실린 ‘불장난’에서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겪는 ‘나’는 옥상에 올라가 종이에 불을 붙인다. 손 작가는 “소외감이나 수치심,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해소하는 의미”라고 했다. 표제작 ‘사랑의 꿈’과 ‘해변의 피크닉’은 하나의 이야기를 각각 엄마와 딸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15년차 소설가인 그는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2013년) ‘디어 랄프 로렌’(2017년)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2018년) 등을 내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치지 않고 소설을 쓰는 비결을 묻자 손 작가는 “‘내일 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내 기준에선 성공작”이라며 “항상 ‘이 작품은 나의 최고작이 아니다’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하루에 2000자 이상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손 작가는 “예기치 못한 전개로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며 쾌감을 주면서도 인간의 본질, 존재에 대한 성찰을 끌어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