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는 한국피겨] 차준환, 한국 남자피겨 새 역사 쓰다 남자 피겨 싱글 은메달 쾌거, 15세때 공식대회 첫 4회전 점프 등 한국 ‘최초의 기록’ 수차례 작성… 프리서 0.08점 감점 ‘클린 연기’
세계선수권 은메달 차준환이 25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마친 뒤 자신의 점수(196.39점)를 확인하면서 놀라고 있다. 차준환은 프리스케이팅 개인 최고 점수를 받았다. 23일 쇼트프로그램에서도 개인 최고점(99.64점)을 기록한 차준환은 합계 296.03점으로 은메달을 땄다. 한국 남자 선수 최초의 세계선수권 메달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내게도, 한국 남자 선수들에게도 첫 메달이라는 게 너무 영광스럽다.”
한국 남자 피겨 싱글에서 ‘최초의 길’을 걸어온 차준환(22·고려대)이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차준환은 25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96.39점을 받아 이틀 전 쇼트프로그램(99.64점)과 합산 296.03점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남자 선수의 세계선수권 싱글 첫 메달이다. 차준환은 지난해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세웠던 자신의 역대 최고점(282.38점)도 경신했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개인 최고점이었다.
23일 쇼트프로그램을 마쳤을 때 차준환은 우노 쇼마(일본·104.63점), 일리아 말리닌(미국·100.38점)에 이어 3위였다. 전문가들은 차준환의 메달 획득을 전망하면서도 프리스케이팅에서 순위를 끌어올리기는 힘들 것으로 봤다. 프리스케이팅 연기에 쿼드(4회전) 점프 6개를 넣은 말리닌의 기본 기술점수(106.66점)가 차준환(85.40점)보다 20점 이상 높았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쿼드 점프를 소화하는 말리닌은 ‘쿼드의 신’으로 불린다. 차준환의 프리스케이팅엔 쿼드 점프 2개가 포함됐다.
차준환이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싱글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23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에 나선 차준환이 마이클 잭슨의 메들리 곡에 맞춰 연기하는 모습. 사이타마=게티이미지
차준환은 베이징 올림픽 직후 열린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또 한 번 개인 최고기록 경신에 도전했었다. 하지만 공식연습 첫날 부츠의 끈을 고정하는 후크가 부러졌다. 임시로 수리한 스케이트를 신고 출전했는데 쇼트프로그램에서 17위에 그친 뒤 프리스케이팅은 기권했다.
차준환은 “이번에도 대회를 준비하면서 같은 곳이 또 부러져 여기 오기 전에 스케이트를 바꿔야 했다”며 “지난해에는 부츠 때문에 기권했지만 오늘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드렸다. 이런 경험이 나를 더 성장하게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금메달은 우노(301.14점)에게, 동메달은 말리닌(288.44점)에게 돌아갔다.
‘꽃피는 연아 키즈’… 이해인, 10년만에 세계선수권 메달
여자 싱글 은메달 목에 걸어
김예림 유영 등도 꾸준히 좋은 성적
‘피겨 여왕’ 김연아(33)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 은퇴했다. 하지만 김연아가 한국 피겨에 뿌린 씨앗은 10년가량 지난 올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이해인. 사이타마=신화 뉴시스
김연아 이후로 한국 선수가 피겨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딴 것은 이해인이 처음으로 10년 만이다. 김연아는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6개(금 2개, 은 2개, 동 2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마지막 메달은 2013년 세계선수권의 금메달이다.
이해인은 지난달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도 210.84점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역시 한국 선수로는 김연아 이후 14년 만의 정상 등극이었다. 이해인은 아홉 살 때 김연아가 출연한 아이스쇼를 보고 피겨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해인뿐 아니라 김예림(20·단국대), 유영(19) 등도 세계 무대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9위를 한 김예림은 그해 ISU 그랑프리 5차 대회 NHK 트로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선수의 그랑프리 대회 우승은 김연아 이후 처음이었다. 김예림은 지난달 4대륙선수권에서는 이해인에 이어 은메달을 수확했다. 올 시즌 다소 부진하지만 유영도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는 김연아 이후 최고 성적인 5위까지 올랐다.
신지아. 대한빙상경기연맹 제공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엔 피겨 최강국인 러시아 선수들이 참가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피겨가 질과 양 모두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의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한국 피겨는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에서도 메달을 기대해 볼 만하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