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탈북어민 북송사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 고위급 인사 4명의 1심 절차가 오는 4월부터 시작된다.
27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부장판사 허경무·김정곤·김미경)는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 전 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오는 4월14일로 지정했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공판이 아니기 때문에 피고인의 출석 의무는 없다. 따라서 정 전 실장 등의 법정 출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 요지를 들은 뒤 피고인 등의 입장을 확인하고 향후 심리 계획을 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은 강제북송 방침에 따라 중앙합동정보조사를 중단·조기 종결하도록 해 중앙합동정보조사팀의 조사권 행사를 방해한 혐의도 있다.
서 전 원장에겐 허위공문서작성 및 허위작성공문서행사 혐의도 추가로 적용됐다. 중앙합동정보조사팀의 조사결과보고서상 탈북어민들의 귀순요청 사실을 삭제하고, 조사가 계속 중임에도 종결된 것처럼 기재하는 등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한 후 통일부에 배포하도록 한 혐의다.
검찰은 공소장에 서 전 원장이 2019년 11월 동료 선원들을 살해한 북한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보고를 받고 “흉악범인데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되나”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또 서 전 원장은 같은 달 4일 새벽 국정원 3차장에게 “16명이나 죽인 애들이 귀순하고 싶어서 온 것이겠냐, 귀순의 진정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라며 “북송하는 방향으로 조치의견을 넣어서 보고서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으로 검찰은 조사했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북한 어민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대한민국으로 넘어와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북한으로 강제 추방된 사건이다.
같은 해 11월 한 시민단체가 정 전 실장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으나, 검찰은 2년 뒤인 2021년 11월 사건을 개시할 만한 이유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각하 판단을 내렸다. 이후 지난해 국정원 등의 고발에 따라 수사를 진행해왔다.
국정원 고발 이후엔 통일부가 탈북어민 북송 당시 현장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는 관련 사진과 영상을 공개해 당시 조치에 대한 강제성 논란이 커졌다. 사진과 영상에선 탈북어민 한 명이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쪼그려 앉아있다가 다수 인원에게 이끌려 이동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정 전 실장 등은 지난해 10월 기자회견을 열고 “이들(북한 어민들)은 합동 신문 과정에서 우리 팀에 귀순의향서를 제출했으나 주무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이들의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들을 외국인의 지위에 준해 북한으로 추방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며 “이들을 대한민국 일원으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어서 이들에 대한 추방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됐으나 기소 대상엔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은 사건의 최종 책임자를 정 전 실장으로 판단해 문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향후 조사 계획도 현재로선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