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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라도 더 싼 곳 찾아”… 불황에 美도 ‘저가 PB상품’ 열풍

입력 | 2023-03-28 03:00:00

‘트레이더조’ 등 유통가 가보니



경기 불황이 닥치면서 미국에서도 필수재를 중심으로 마트 자체브랜드(PB)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트레이더조, 타깃, 월마트 등을 찾은 이들은 1∼2달러라도 더 저렴한 상품을 사려고 PB 매대를 먼저 찾았다. 로스앤젤레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경기가 안 좋아 조금이라도 더 싼 걸 찾다보니 이곳까지 왔어요.”

7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인근 마트 ‘트레이더조’에서 만난 학생 밍 씨는 이렇게 말했다. 트레이더조는 매장 전부가 자체브랜드(PB) 상품으로 채워진 마트. 일반 제품보다 가격이 20∼30% 낮으면서도 일정 수준의 품질을 갖춘 PB 제품을 판다. 평일 오후 2시경이었지만 이날 약 660㎡(200평) 규모의 매장에는 밍 씨처럼 더 싼 물건을 찾아서 온 방문객이 가득했다.

불경기와 고물가가 이어지며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 유통가에서도 마트 PB 상품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 27일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2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6.0% 상승했다. 자연스레 생필품을 중심으로 품질이 보장되면서도 가격이 낮은 PB 상품이 유행 중이다. 미국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크로거의 지난해 4분기(10∼12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2% 증가했다. 특히 PB 상품 판매는 이 기간 10% 증가했다.

트레이더조 인근의 마트 ‘타깃’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식품 코너의 주스, 식빵 등 PB 제품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만난 크리스토퍼 씨는 “물가가 급등해 식재료를 살 때도 1∼2달러 차이가 무섭다”며 “굳이 비싼 걸 살 이유가 없다”고 했다. 월마트 등에도 식품 코너만 유독 북적였다.

반면 생활에 꼭 필요하지 않은 임의소비재(discretionary items)에 쓰는 돈은 줄었다. 특히 7∼8일에 걸쳐 찾은 현지 마트의 가전을 비롯한 전자제품 코너에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한두 명도 보이지 않았다. 고가 소비에 지갑을 닫는 추세에 따른 것. 금리 인상으로 구매력이 떨어진 점도 한몫하고 있다. 미국 전자제품 전문점인 ‘베스트바이’는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이 147억 달러로 전 분기보다 10.0% 줄었다.

불황의 장기화로 필수재에 소비가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필수품과 그렇지 못한 품목 간 소비 패턴에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며 사람들은 옷과 전자제품 등 일부 상품 구매를 줄였고, 필수품일 경우 더 저렴한 PB 상품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고물가 영향으로 가성비 좋은 PB 상품이 다시 인기다. 이마트의 PB인 노브랜드는 지난해 매출 1조2700억 원으로 2019년 대비 매출이 53.0% 늘었다. 27일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PB 상품 전문점 ‘노브랜드 마트’가 속한 전문점 분야 흑자 폭은 4분기 연속 늘었다.

다만 여전히 매대 절반 전부를 PB 상품으로 채우는 미국에 비하면 한국은 PB 성장세가 약한 편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PB 역사가 짧아 생산 및 유통 라인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PB 제품의 브랜딩도 과제다. 트레이더조나 홀푸드 등의 PB 상품은 싸면서도 품질이 좋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국내 PB 제품은 아직 기능적인 면에 충실한 경우가 많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PB는 보증된 품질과 저성장세가 결합된 선진국형 소비의 총체”라며 “한국도 유통업체들이 제조업체 선정이나 라인 확보를 꾸준히 이어가며 가성비 높은 PB 라인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