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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서울 한복판서 쓰러져도 25곳서 퇴짜 맞는 응급의료체계

입력 | 2023-03-29 00:00:00

1월12일 오후9시 20분 도로에 정차한 구급차 안에서 잠실119구급대 정진우 반장(왼쪽)과 최경환 반장(가운데)이 각기 다른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고 있다. 들것에 누워 있는 진수(가명·68)씨를 이송할 응급실을 찾기 위해서다. 심장이 아프다고 한 진수 씨는 이들이 전화를 거는 내내 가슴에 손을 올리고 눈을 질끈 감은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었다. 사진=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


올 1월 12일 서울 잠실에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68세 응급환자가 발생했다. 가족의 신고로 119구급대가 왔으나 구급차는 출발하지 못했다. 연락하는 병원마다 빈 병상이 없거나 의사가 없어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와도 된다”는 허락은 병원 25곳에서 퇴짜를 맞은 다음에야 떨어졌다. 대형병원 56곳이 밀집한 서울 한복판에서 평일 저녁 벌어진 일이었다.

119구급차를 타고도 응급실을 찾지 못해 거리를 표류하는 것을 ‘응급실 뺑뺑이’라고 한다. 2021년 한 해 119 출동 이후 1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하지 못한 뺑뺑이 환자는 19만6561명이었다. 160초마다 한 명꼴로 이런 일을 경험하는 셈이다. 운 나쁜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의 주변에서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지난해 10월부터 37일간 응급실을 제때 가지 못한 환자 26명과 가족, 구급대원들을 밀착 취재한 결과 이들은 극도의 절망감을 호소했다. 90대 할머니를 태운 구급차가 30곳 넘게 전화를 돌리고도 응급실을 찾지 못해 가족들이 “그만 포기하고 집에서 편히 임종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보면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들이 치료 골든타임을 속절없이 흘려보내게 된다. 경기 화성시 동탄은 반경 10km 안에 4곳의 대학병원이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 뇌출혈로 쓰러진 13세 학생은 소아과 전문의를 찾아 헤매다 119 신고 후 3시간 48분 만에야 수원에 있는 한 병원의 수술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비수도권은 사정이 훨씬 더 열악하다. 다리가 부러진 박종열 씨의 경우 응급실에는 제 시간에 도착했으나 끊어진 혈관까지 수술할 의사가 없어 경남 김해시의 한 병원에서 260km 떨어진 충북대병원까지 응급차에 실려 2시간 39분을 달려야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의료진 부족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력 부족이 심한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응급실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전공의가 전체 정원의 20%대밖에 안 된다. 외과 의사들도 하루 걸러 야근을 해야 할 정도로 인원 부족에 시달린다. 환자와 응급실을 연결하는 시스템도 부실하다. 구급대원들이 일일이 병원에 전화해야 한다. 응급 환자 이송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떠오른 구급차와 응급실의 핫라인 개설은 감감무소식이고, 병원의 빈 병상과 의사 당직 현황을 알려주는 시스템 역시 없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응급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며 발표한 대책에는 여전히 부족한 의료진 충원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다. 의사가 부족한 지방에서 병원의 응급 의사 당직을 함께 묶어 운영하는 ‘순환당직제’ 역시 5년 전 정책의 재탕에 불과하다. 사건이 터지면 응급의료 체계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잠잠해지면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응급실, 의사, 병상을 찾아 ‘표류’하는 일이 없도록 응급의료 체계 전반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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