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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전사’로 퇴보하는 비례 의원, 이대로 늘린들 뭐 하나[수요논점]

입력 | 2023-03-29 03:00:00

비례대표 확대를 둘러싼 쟁점




《22대 총선(4월 10일)을 1년 남짓 남긴 여의도 정치권에서 각 당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한 이슈, 복잡하고 난해한 수많은 방정식으로 얽혀 있는 이슈가 선거제 개편이다. 개편의 핵심 명분은 비례성과 대표성 확대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의 불균형을 해소해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양당제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비례대표 정수 확대도 주요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를 위해 국회는 30일부터 2주간 5차례 전원위원회 회의를 열고 새 선거제를 논의한다. 전원위는 국회의장을 제외한 의원 299명이 모두 참여해 특정 안건에 대해 토론하는 기구다. 여기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제시한 3개 안을 압축해 단일안을 도출하고 이 안을 다시 정개특위, 법사위, 본회의 순으로 의결해 최종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원위에서 의원들 다수가 지지하는 개편안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내년 총선 직전까지 선거제를 둘러싼 혼란이 계속될 수도 있다.》




●전원위서 ‘단일안’ 합의 처리하겠다지만


전원위에 상정된 안건은 ①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②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③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세 가지다.

①안은 서울 및 수도권 등 대도시에는 3∼5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농어촌에선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방안이다. 일부 지역구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해당 지역구 의원에겐 상대 당뿐 아니라 같은 당 의원 역시 경쟁자다. 특히 당 지도부 혹은 실세 의원과 인접한 의원들에겐 위협적이다. 국민의힘이 ①안을 제안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에서 수도권 의석 121석 중 104석을 차지하는 등 득표율 대비 의석수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나머지 2개 안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제안했다. ②안은 한 선거구당 4∼7명을 뽑는 대선거구제로 지역구 선거를 치르고 개방형명부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 ③안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대선거구제를 채택한 ②안은 정의당 등 제3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여준다. 다만 전체 지역구 253석 중 40%를 차지하는 수도권 의석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내부에선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득이란 의견이 많다. 민주당이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제만 손보는 ③안을 함께 낸 배경이다.


●비례대표 확대가 답?

비례성 강화를 위한 비례대표 확대 여부도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의 왜곡 현상을 동반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민주화 후 12대부터 21대 총선까지 평균을 내보면 사표 비율이 무려 49.98%”라며 “50%의 의사는 투표 결과에서 죽어버리기 때문에 ‘우리 진영만 잘 규합하면 이긴다’는 왜곡된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의원의 비중을 늘리면 과다대표, 과소대표 현상을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다양성이 중시되면서 단순다수제에서 비례대표제로 전환 또는 혼합하는 추세를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22년도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100%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스웨덴·네덜란드 등 17개다. 한국, 일본, 독일 등 8개국은 다수대표·비례대표 혼합제를 실시하고 있다. 다수대표제를 채택한 국가는 영국, 미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 5곳(하원 기준)이다. 비례대표 의원 수도 상대적으로 한국이 적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하고 있는 일본 참의원(하원)은 지역구(289명)와 비례대표(176명)의 비율이 1.64 대 1이다. 그러나 한국은 5.38 대 1이다. 독일 이탈리아 등의 하원은 비례대표 의원 수가 지역구보다 많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사표를 줄이고,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비례대표 확대”라며 “전원위에 제출된 3가지 안이 비례대표 확대를 명시적으로 담고 있지 않지만, 전원위 논의 과정에서 이를 포함한 대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치 양극화 첨병 된 비례대표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그동안 공천헌금, 밀실거래 등 여러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비례대표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데, 최근 부각되는 논거 중 하나가 이른바 ‘진영 전사론’이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입법에 반영하기 위해 뽑은 비례대표 의원들이 반대로 양극화 정치를 부추기는 각 당의 첨병, 저격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1인 2표 정당명부식의 현행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2004년 17대 국회부터 비례대표 의원의 80%가량이 재선을 노리고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당의 공천을 받은 의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21대 총선에서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에서 각각 10명이 넘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출사표를 냈지만 공천을 받은 의원은 각각 5명과 4명에 불과했다. 이렇다 보니 지역구를 노리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더 정쟁에 앞장서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서울대 한규섭 교수는 “17∼20대 국회에서 처리된 약 300만 건의 표결 기록을 분석한 결과 각 당의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 의원들에 비해 극단적인 표결 경향을 보였다”며 “비례대표 의원들이 당 지도부의 ‘친위대’ 성격이 강한 것이 수치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역구 출마를 겨냥한 과한 의정 활동이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격한 언사 등으로 논란을 빚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지역구 의원들도 충분히 전문성,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며 “직능을 대표한 입법 활동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낸 비례대표가 얼마나 되나. 비례대표는 결국 지역구 공천을 위한 발판일 뿐”이라고 말했다.


●“공천 시스템 투명하게… 정당 개혁 선행돼야”

이번 전원위에서는 비례대표 정수 확대부터 비례대표제 폐지, 공천과 선출 방식을 둘러싼 갖가지 방안이 충돌할 것이다. 각 당별, 의원별 이해관계가 다 다르다는 점에서 19년 만에 열린 전원위에서도 단일안이 도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정계와 학계에선 양극단의 혐오 정치를 바꿀 대안으로 비례대표 확대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만 비례성과 대표성을 기계적으로 높이기 위해 지금의 비례대표제를 그대로 확대한다면 ‘정책적 대표성’은 축소되고 ‘진영 전사’ 양성 루트만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현행 ‘폐쇄형 명부제’는 유권자는 지지하는 정당만 선택하고 당선 순번은 각 당이 정한다. 이를 유권자가 지지 후보까지 선택하고 득표순으로 비례대표를 뽑는 ‘개방형 명부제’로 바꾸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다.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공천 과정 투명화와 구체적인 공천 기준 및 방법 제시 등 정당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