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상징하는 붉은 원피스를 입은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순회회장 내정자. 2018년 12월부터 1029일간 캐나다에 억류됐던 그는 2021년 9월 광둥성 선전 공항으로 귀국해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선전=AP 뉴시스
하정민 국제부 차장
“조국이 없었다면 자유의 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2018년 12월 캐나다에서 미국의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된 뒤 1029일간 억류됐던 멍완저우(孟晚舟·51) 중국 화웨이 순회회장 내정자가 2021년 9월 말 선전공항에서 밝힌 귀국 소감이다. 당시 그는 “오성홍기가 있는 곳에 신념의 등대가 있다”며 중국공산당에 무한 충성을 맹세했다. 중국 또한 이런 그를 “무역 분쟁의 순교자”라며 홍보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 ‘틱톡’ 이전에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갈등을 상징했던 화웨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멍완저우는 다음 달 1일부터 6개월간 ‘화웨이 2인자’ 순회회장직에 오른다. 화웨이는 3명의 부회장이 6개월씩 돌아가면서 순회회장을 맡는데 이번이 그의 차례다. 그의 부친 겸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79) 최고경영자(CEO)는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딸의 승계가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억류 후 상황이 달라졌다. 각국 언론은 그가 집에서도 샤넬 가방을 들고 마놀로블라닉 구두를 신었다는 등의 일거수일투족을 시시콜콜 보도하며 그를 세계적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중국은 그를 최고위 관료급으로 대우하며 줄기차게 석방을 요구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021년 9월 초 통화에서도 그의 석방이 주요 의제였다고 중국 외교부가 직접 밝혔을 정도다.
그가 귀국한 뒤 관영 언론은 입을 모아 칭송했다. 미중 갈등에 따른 벼락을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혼자 받아낸 ‘피뢰침’ 같은 존재이며 서방에 굴복하지 않고 개선 장군처럼 귀국했다는 낯간지러운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다음 달 회장에 취임한 뒤에도 비슷한 보도가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런정페이의 세 자녀 중 그가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멍완저우는 첫 부인 멍쥔(孟軍)의 소생. 런정페이는 창업 전부터 멍쥔의 부친 멍둥보(孟東波) 전 쓰촨성 부성장의 덕을 많이 봤다.
국공 내전 당시 국민당을 위해 일했던 부친을 둔 탓에 런정페이의 가족은 문화대혁명 시기 ‘반동’으로 몰려 모진 탄압을 받았다. 장인을 통해 일종의 신분 세탁을 한 뒤 인민해방군에 입대할 수 있었고 창업으로도 이어졌다. 런정페이는 이혼과 관계없이 멍둥보를 존경하며 그래서 딸에게 외조부의 성을 붙였다고 줄곧 언급했다.
2022년 추정 매출이 926억 달러(약 120조 원)가 넘지만 아직 상하이, 선전, 홍콩 증시 등 어느 곳에도 상장하지 않았다. 런정페이 또한 일종의 ‘바지 사장’이며 실질적인 지배자는 일부 당, 군 간부임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비상장 기업으로 남아 있다는 설이 제기된다. 애초에 화웨이라는 기업명 자체가 ‘중화유위(中華有爲·중화민족을 위한다)’의 줄임말이다. 미국 등 서방이 화웨이를 민간 기업의 외피를 두른 사실상 중국의 정보기관으로 보는 이유다.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5세대(5G) 이동통신 등 21세기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 대만 등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 또한 언제 전쟁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에 다다랐다. 원했건 아니건 한 개인을 넘어 신냉전의 상징이 된 멍완저우. 이 위험한 시기에 그가 어떤 경영 능력을 보여줄지 관심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