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上]준규군-종열씨의 ‘잃어버린 시간’ 응급의료 시스템 마비… 119도 병원도 손쓰지 못했다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시간 ‘1분’. 하지만 응급환자라면 삶과 죽음이 뒤바뀔 수 있는 시간이다. 두 손 모아 회복을 기도하는 그의 가족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준규 군(13)과 엄마 윤영이 지난해 12월8일에 겪은 1분이 그랬다. 윤영은 아들의 뇌에 피가 퍼져 가는 줄도 모른 채 구급대가 응급실 8곳에 “아이 좀 받아달라”고 읍소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같은 해 10월 25일, 박종열 씨(39)는 병원 23곳에서 혈관을 이어붙이는 수술을 거절 당하는 내내 “다리 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구급대와 응급실, 수술실이 어긋난 채 돌아갔던 준규의 228분과 종열의 378분을 ‘1분 단위’로 복기해 봤다.
두 환자를 이송했던 구급대원, 진료했던 응급실 의사와 수술실 의사 등 31명을 인터뷰했다.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표류하는 동안 막후에서 벌어졌던 일을 추적하고자 119종합상황실과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의 통화 기록 등 미공개 자료를 포함한 총 1300쪽이 넘는 기록을 검토했다.
준규가 아주대병원에 도착했을 때 찍은 뇌혈관 사진. 혈관이 터져 두개골 안에 피가 차오르고 있었다.
여기 우리 사회 의료 안전망이 무너진 이유를 찾기 위한 ‘부검(剖檢)’ 보고서가 있다.
준규의 228분
준규의 두개골 안에선 혈관이 터져 피가 차오르고 있었다. 이땐 아무도 몰랐다.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 따라서 준규는 두 명의 의사를 만나야 했다. 응급실 의사와 수술실 의사다.
이렇게 아낀 시간이 무색해지는 때가 있다. 이번 출동이 그랬다.
그런데 준규가 쓰러진 순간, 용철은 다른 환자를 시술 중이었다. 길면 3, 4시간까지 걸리는 수술인데 이제 27분 지났다.
용철(오른쪽)이 뇌출혈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목에 두른 건 방사선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납 보호대다. 수술 내내 방사선을 쬐는 생활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용철은 갑상샘에 종양이 생겼다.
준규의 갈비뼈 부근을 세게 문지르니 “아!” 하고 반응한다. 강한 자극에는 반응하지만 의식이 없는 응급환자다. 수축기 혈압 110mmHg, 분당 심박 97회. 혈압과 맥박은 정상이지만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 의식을 잃은 원인을 찾아야 한다.
윤지는 준규를 구급차에 싣고 응급실에 전화해 보기로 한다. 대다수의 응급실이 소아과 의사가 부재중이면 만 15세 이하 환자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응급실에나 전화할 수 없고, 평소 소아과 의사가 상주하는 곳에 먼저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갈 수 있는 병원을 찾으면 구급차를 출발시킬 수 있다.
준규를 태운 119구급차가 출발하지 못한 채 멈춰서 있다. 구급대원이 인근 병원마다 일일이 전화해 수용이 가능한지 묻고 있다. 119구급차 CCTV 화면 캡처
2:50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에 전화했다. “의사가 있지만 이미 환자가 너무 많아 더 이상 눕힐 침대가 없다”고 한다.
2:50 아주대병원에 전화했다. “담당 의사가 부재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들 병원 3곳은 평소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모두 준규를 받기 곤란하다고 했다.
구급차에는 근처 응급실에 빈자리가 있는지 보여주는 ‘병상정보 상황판’이 있다. 전혀 쓸모가 없다. 소아를 보는 의사가 현재 근무 중인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그런 정보는 안 나온다.
소아 경련의 원인을 검사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이 병원의 유일한 소아신경 전문의가 하필 코로나19에 걸려 격리 중이었다. 만약 준규가 우려대로 뇌염이나 뇌전증이라면 치료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다 시간을 지체하면 뇌에 문제가 생기거나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었다.
결국 은재는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응답했다.
아주대병원 응급실에서 한 직원이 119 전화를 받으며 환자 상태를 A4용지에 메모하고 있다. 경기 수원시와 그 일대에서 가장 많은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이 응급실에는 하루에만 100통 안팎의 이송 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도 메모지는 금세 가득찬다.
2:56 분당차병원에 전화했다. “와도 입원은 어렵다”고 한다. 이 병원에는 소아 입원 환자를 돌볼 일손이 부족했다. 이미 이들이 돌볼 수 있는 환자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입원 중이었다. 이날도 이 응급실에선 10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했다. 다른 병원들이 소아 환자를 잘 받지 않다보니 이 병원으로 환자가 몰렸다. 1년 전에는 경련을 하다 심장이 멎은 생후 30개월 아이가 1시간 거리에서 이곳으로 온 일까지 있었다. 그날 소아 응급실은 그 아이를 치료하느라 다른 환자를 받지 못했다.
3:07 한림대 성심병원에 전화했다. “병상이 포화 상태”라고 한다.
윤지는 구급차를 출발시켰다. 목적지는 없다. 일단 북쪽으로 향한다. 성남시 분당구와 안양시까지 거리를 늘려 전화해봤지만 오라는 병원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서울을 지나 경기 북부까지 가야할 수도 있다. 그곳 병원까지 알아보려면 손이 모자란다. 119종합상황실에 “병원을 알아봐 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준규의 열을 내리기 위해 히터를 끄고 멈춰선 겨울의 구급차 안, 전화기를 붙든 윤지는 추위를 잊었다.
3:08 상황실 직원은 분당서울대병원에 전화했다. “근처 병원으로 도저히 이송을 못하면 와도 되지만 코로나19 선별 검사를 먼저 해야 한다”고 한다.
3:10 윤지는 동수원병원에 전화했다. “소아과 의사가 없다”고 한다.
3:11 상황실 직원은 이어 아주대병원에 전화했다. “다른 곳에서 정 안 받아주면 여기서 응급처치는 가능하다”고 한다.
경기 수원시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종합상황실 직원들이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찾고 있다.
3:16 상황실 직원은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에 전화했다. “여기선 이송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며 다른 번호를 알려줬다.
3:18 직원은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에 다시 전화했다. “이미 중환자실에 대기 환자가 3명 밀려 있어서 어렵다”고 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종합상황실의 모습.
두 곳 다 상황은 불확실하지만 서둘러 결정해야 했다. 준규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결론은 아주대병원이었다.
준규의 상태를 보니 긴 시간 깨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 혈압도 높다. “어제부터 눈이 아프다고 하더니 오늘은 머리가 아파 학교를 못 갔다”는 윤영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뇌출혈일 때도 나타나는 증상이다. 은재는 준규를 검사실로 보냈다.
은재의 연락에 신경외과 전공의가 1층 응급실로 달려왔고, 준규의 상태를 보고 용철에게 전화했다.
준규가 아주대병원에 도착했을 때 찍은 뇌혈관 사진. 혈관이 터져 두개골 안에 피가 차오르고 있었다.
준규 머리를 열고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다. 출혈로 뇌압이 높아져 피가 높게 솟아오른다. 피를 빼 압력을 낮춰야 한다. 그런 다음 터진 뇌혈관을 막아야 한다. 어느 것 하나라도 서두르지 않으면 식물인간이 되거나 사망할 수 있다. 이미 출혈이 너무 많다. 사망률이 40% 이상이다.
용철의 뇌 시술 모습. 뇌출혈 치료에는 여러 전문 의료진과 장비들이 동원된다.
준규처럼 생사를 헤매는 순간에도 병원을 찾아서 떠돈 환자는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소방청이 내는 공식 자료에는 ‘재이송’ 통계가 있다. 구급차가 환자를 태우고 응급실 앞까지 갔지만 받아주지 않아 돌아선 사례를 집계한 수치다. 2021년 7634건이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실제 ‘응급실 뺑뺑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직접 응급실 앞까지 갔다가 거절당한 환자만 여기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준규를 이송했을 때처럼 전화 문의를 거절한 사례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구급대의 이송 문의 전화를 거절한 기록은 어디에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표류’를 엿볼 수 있는 수치가 있긴 하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지난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화 수용 거절’을 집계했다. 응급환자 44만6866명을 이송했다. 그중 병원을 한 번에 찾지 못해 2곳 이상에 전화한 사례가 8만5099명이었다. 전체 이송 환자 가운데 5명 중 1명꼴이었다. 처음 전화한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은 환자 중에는 심정지나 의식장애, 가슴 통증, 호흡곤란, 경련 등 중증 의심환자도 1만8565명이나 됐다.
지금으로선 이런 일을 겪은 환자가 전국에 몇 명이나 있었는지, 그들이 제때 치료받아 목숨을 건졌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 없다.
본 기사는 3월30일자 동아일보 A1⋅4⋅5면에 실렸습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표류: 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그들이 구급차를 탔던 날’ 등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디지털 플랫폼 특화 기사는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생사의 경계에서 표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그들이 구급차를 탔던 날’
(original.donga.com/2023/sos1)
응급환자와 구급대원들이 구급차에 갇혔던 75분을 숨소리까지 담은
‘강남에 응급실이 없었다’
(original.donga.com/2023/sos2)
응급의료 현장을 360° 영상으로 구현한
‘표류 속으로’
(original.donga.com/2023/sos3)
▽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취재: 송혜미 이상환 이지윤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임희래 인턴
▽인터랙티브 디자인: 곽경민 인턴
수원·오산=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