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 찾은 바이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28일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반도체 생산업체 ‘울프스피드’ 공장을 찾아 발언하고 있다. 조만간 재선 도전을 선언할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부터 3주간 자신의 정책 입법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20여 개 주를 순회한다. 더럼=AP 뉴시스
미국이 반도체법 보조금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기업들의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들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미 상무부가 31일부터 시작되는 보조금 신청을 앞두고 공개한 세부 지침에 따르면 기업들은 웨이퍼 수율(收率·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을 비롯해 분기별 생산 능력과 가동률, 수익 전망, 핵심 소재, 제조 비용 등을 세세히 엑셀 파일에 기록해 제출해야 한다. 반도체 제조 경쟁력의 핵심 지표이자 대외비로 관리돼 온 영업 정보들까지 사실상 모두 공개하라는 것이다.
반도체 기업들의 정보 제출은 “보조금 지급에 필요한 심사 자료”라는 이유로 미국이 앞서 예고했던 것이지만 그 수준은 지나치다. 민감한 경영정보들을 이렇게까지 수치화해 외국 정부에 제출하라는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일부는 산출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경쟁사 등으로 유출될 경우 기업의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기업들이 부담할 부가비용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우려스럽다. 상무부가 별도로 내놓은 97장짜리 ‘노동력 개발 계획 지침’에 적시된 근로자 고용, 교육 조건들은 상당수가 추가 인력과 시간 투자가 필요한 것들이다. 막상 초과 수익이 발생하면 보조금의 75%까지 토해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신규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에도 걸려 있다. 미국이 중국에 맞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자며 공장 유치에 나설 때만 해도 없었던 내용들로, ‘반도체 갑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차라리 보조금을 안 받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오지만 한국으로서는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대만 일본 등과 공조하며 미국의 심사기준 완화 조치를 이끌어내는 게 현실적 대안이다. 정부는 경제안보 협력을 유지하되 상호 신뢰를 해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 측에 당당히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